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 28 - 오징어 건조 이야기

14,783 2011.07.0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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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냄새가 나는 마른 오징어는 서민들의 아픈 노력이 말라 붙은 향기이다. 울릉도 오징어는 귀(지느미) 가운데 구멍이 났지만 속초 오징어는 제일 윗 부분에 이빨 자국이 나있다. 처녀든 아줌마든 오징어 손질을 하는 사람은 오징어를 말리고 이틀째 늘리는 작업을 할 때 오징어 귀를 물고 양 볼테기를 잡아 늘인다. 넓게 펴는 작업을 한다. 어쩌다가 가끔 오는 외국 관광객은 그 장면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가곤 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무슨 생각을 할까? 그 냄새나는 오징어를 물고 늘이는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질근 질근 밟고, 밟은 오징어를 또 새끼줄에 말리는 모습을....

아침에 배가 들어오면 어판장에는 칼을 든 아낙네들이 모여든다. 오징어 배를 할복하는 팀이다. 흥정이 끝난 오징어가 주인에게 넘어가면 예리한 칼을 가지고 쭈그리고 앉아 오징어 배를 할복하기 시작한다. 그 할복하는 솜씨가 어찌 빠른지 칼 놀림이 전부 번개 같다. 달인이 따로 없다. 그 현장에 모여든 아줌마나 처녀들이 다 달인이다. 한 마리라도 더 쪼개면 그 많큼 임금을 더 받기 때문이다. 쌓이는 내장은 드럼통에... 할복된 오징어는 광주리에 담겨져 바다에서 길어 올린 물로 세척을 한다. 아니면 큰 포장(갑바)위에다 펼쳐서 물을 사정없이 부어서 먹물과 내장을 씻어 낸다. 씻고 난 오징어는 리어커에 담겨져 덕장으로 달린다. 오징어는 사람 손이 더 갈 때마다 선도가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주물럭 거리지 못하게 하고 즉석에서 말려야 최상품이 된다. 대체적으로 보면 전날 저녁에 잡은 오징어는 선도가 떨어져 맥없이 늘어져 있고, 아침에 잡은 오징어는 할복 후에도 푸르슴한 윤기가 난다.

오징어 건조는 오징어를 잡는 것만큼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여름철이 가까우면 준비할 것이 여러 개 있는데 긴 장대를 쪼개어 만드는 꼬쟁이, 덕장에 구멍을 박을 말뚝(소나무 고랑대), 새끼줄, 그리고 작업을 하거나 비가 오면 덮을 갑바(비닐 천)이다.
긴 장대는 여러 개 준비한다. 15센티 정도의 크기로 토막을 낸다. 이 잘려진 나무 통나무는 여러 개로 쪼개어 수십 개의 대나무 꼬쟁이가 된다. 그 꼬쟁이 앞은 비스듬히 경사를 주어 송곳처럼 만든다. 때로 일의 편리를 위해 양쪽을 다 송곳처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 손을 찌르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이 꼬쟁이를 방금 할복한 오징어 윗부분인 귀 중앙 부분과 중간 부분을 가로질러 새끼줄에 고정 시키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리에도 눈을 뺀 자리에 꼬쟁이를 하나 찔러 넣는다. 저녁 즈음에 오징어가 어느 정도 물기가 사라지면 다리를 얹는 역할을 한다.

오징어 말뚝은 모래 백사장인 땅을 파서 묻기도 하지만 방파제에서는 숨구멍에다가 말뚝을 박아 넣는다. 5-7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박아 놓고 나면 거기에다가 새끼줄을 3단 내지 4단으로 맨다. 새끼줄이 좋은 것은 미끄럽지 않아서 쏠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빨래 줄이나 나이롱 끈이었다면 바람이 불면 한쪽으로 쏠리어 오징어가 떡이 된다. 그러지 않아도 미끄러운 오징어 표면이 미끄럼 탈 일이 있는가? 대체로 한 구간에는 오징어가 한 두룸(20마리) 정도가 널린다. 방파제가 45도정도 기울었기 때문에 오징어 말뚝은 자연히 입체가 되고 오징어가 겹치지 않아 일하기가 쉽다. 그래서 박이 터지도록 싸워서라도 방파제 구멍을 확보하는 것이 당시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싸우고 힘없는 사람들이 밀린다.

아바이 마을에서의 힘은 같이 협조할 친척이 많다거나, 아주 억세어서 말을 걸지 못할 정도의 개차반이던지, 배를 몇 척 가져서 돈 꽤나 있는 선주이거나, 욕을 잘해서 상대를 질리게 하는 그런 사람 순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약자이다. 엄마 혼자이지, 누나들이지, 돈 없지, 백 없지, 욕도 잘 못하지, 싸울 여력도 없지.... 그래서 늘 파도가 들락거리는 방파제 아래 쪽이든지, 남들이 취약하다고 안쓰는 곳이거나, 방파제 끝의 간이 등대 밑이라서 고생을 배나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파도가 세어져서 온 식구가 방파제 끝으로 달려 갔다. 마른 오징어를 건지겠다고 새끼줄에 달린 채로 끊어 함지에 이고 오던 누나들의 머리 위로 파도가 쏟아져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또순이 누나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오면 방파제 끝은 너무 멀어서 비를 다 맞히는 곳이다. 오징어는 비를 맞으면 빨갱이가 된다. 말려도 냄새가 고약해서 상품이 떨어진다. 때로 궁여지책으로 집 주변에 말뚝을 박고, 지붕 위로 덕장을 매서 거기에 새끼줄을 치고 오징어를 말리곤 했다. 더운 날 밤 집보다는 덕장 위에서 자는 재미는 지금의 텐트보다 몇 배나 낭만적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별은 다 같은 별인데 그 때 별은 왜 그리 밝고 많았던지? 유성이 꼬리를 물고사정없이 떨어지는 선명한 밤 하늘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 날 완도 청산도에 관광을 갔다. 서편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날 밤 우럭을 잡으려고 방파제에 나갔다. 사방팔방이 다 암흑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어렸을 때 사라진 별들을 찾았다. 왜 별들이 그리 많고 반짝이는지... 유성은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에 바빠 그 별들이 반짝이는 어린 시절 에 고생하며 지새운 밤을 잊었을까? 나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닌지? 고기를 잡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징어 건조는 처음에 할복 후에 집에 와서 민물과 바닷물을 고루 섞어서 말린다. 간이 맞아야 맛이 있다. 대체로 여름 오징어는 싱거운데 겨울 오징어는 좀 짠 편이다. 추워서 민물을 덜 섞어서인지 급히 칼바람에 맞아서인지 짜다. 씻은 오징어는 세수 대야나 바께즈에 담아 꼬쟁이를 끼고 새끼줄에 넌다. 최초 꼬쟁이를 끼워 넣는 위치는 오징어 전체의 3분의 1 지점이다. 그래야 몸통을 뒤로 재껴서 꼬쟁이를 뒤에서 찔러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침 9시나 10시에 넌다. 날이 좋을 때 오후 1시쯤 되면 어느 정도 물기가 가신다. 물론 그 전에 양쪽 눈알을 뽑은 구멍에 꼬쟁이 하나를 더 집어 넣는다. 이는 다리를 잘 말리기 위한 것이다. 말라 붙은 다리를 더 굳기 전에 떼고 오징어 몸통을 뒤집기 시작한다. 저녁 때가 되면 이 오징어를 거두어서 꼬쟁이를 빼고 오징어 귀를 붙잡고 늘이는 1차 작업을 한다. 그리고 잘 펴져라고 밟는다. 밟은 오징어는 날씨를 봐서 새끼줄에 반 쯤 허리를 걸쳐 말린다. 다음 날 해가 뜨면 아침에 새로 산 오징어를 널고 난 다음 시간에 거두어 최종적으로 한 번 더 밟고 늘린다. 그리고 새끼줄에 반즘 걸쳐 말린다. 다 말린 오징어는 이틀간 이불이나 천으로 덮어 두어서 분이 나오게 한다. 그리고 축을 잡는다. 20마리씩 묶는다. 이 작업에는 어린 우리는 큰 오징어와 작은 것을 구별하여 놓기만 한다. 묶는 것은 전문가인 엄마와 큰 누나가 한다. 묶은 모양이 좋아야 상품이 되고 가격도 더 받는다.

바람이 불고 구름 없이 개어 주면 오징어는 3일이면 상품이 된다. 그러나 가을은 대체적으로 날씨가 좋지만 여름에는 몹시 변덕을 부린다. 장마철에는 더 곤욕스럽다. 그럴 때에는 온 식구가 고생이다. 넓은 장소나, 비닐 하우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좁은 곳에 오징어가 3일 4일치 밀려서 일감이 3-4발(300두룸-400두룸)이 되면 사람이 사는 집인지 오징어가 사는 집인지 잠 잘 장소도 없어 오징어 낫가리 위에서 잠을 자느라고 고생이다. 또 젖은 오징어를 연탄에 말리느라고 불 화로를 이리저리 밀고 다니다 보면 중독이 되기도 한다. 가장 좋은 처방전은 김치국으로 항상 옆에 있었다. 오징어 무더기 속에 살면 그 냄새가 몸에 배어 학교에 가도 오징어 냄새, 온 아바이 마을, 속초가 다 ......

오징어 건조의 핵심은 날씨이다. 우리 엄마는 천기를 좀 볼 줄 아는 것 같았다. 당시 일기 예보는 비비선으로 연결된 강통 라디오로 듣는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 예보가 빗나간다. 틀린다고 보면 과언이 아니다. 우리처럼 식구가 다 매달려 오징어 건조를 하는 영세업자들에게는 오징어를 살 때 어떤 날씨에 사느냐가 이익을 남기느냐 손해 보느냐가 결정된다. 날씨가 좋을 때면 값이 대체로 비싸다. 적게 남기더라도 안전하게 사서 건조하면 적어도 인건비는 건진다. 그러나 최대의 효율을 올리기는 아침 어판장에서 경매할 때 날씨가 잔뜩 흐리거나 비가 오면 오징어 값이 제일 하락할 때이다. 그때는 서로 눈치를 보고 사지 않기에 값이 마냥 내려간다. 비를 맞히면 빨갱이 오징어가 되던지 썩어 버리기 때문이다. 남들이 사지 않아 가격이 폭락할 때 비를 맞아 가면서 오징어를 산다. 그런 것을 말리다가 날이 개어 해가 드러날 때는 정말 대박이다. 로또를 맞은 기분일 것이다.

엄마의 일기 예보는 경험과 감이다. 일종의 투기이다. 우리는 투덜 거린다. “이런 날 사서 망할 일이 있어요?” 일하기 싫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엄마는 읽고 있다. 우리의 불평을 무시하고 엄마는 일만 하신다. “설악산 밑을 봐라 날이 개고 있지 않느냐?” 실제로 보면 갤 기미가 없다. 우리는 비이냥 거리며 “어디요 오히려 비만 떨어 지네요” 입이 한발 나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날이 개어오는 것이다. 우리끼리 “우리 엄마 는 신(神)기 있는가 봐?” 물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에 비를 맞아 상품이 못되는 자식 같은 오징어를 바다에 쳐 넣을 때는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징어 건조는 날이 좋아 말린지 이틀이 되었을 때 큰 다리를 씹어 먹는 맛이 가장 좋다. 오징어 다리 10개 중 2개는 유난히 크다. 이 다리는 고기를 잡을 때 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하면서 계속 뽑아 질근 질근 씹어 먹는다. 엄마는 다 먹더라도 큰 겉장이 될 오징어 큰 다리는 먹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그것이 20마리 묶음의 오징어 대표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데로 뽑아 먹는다. 우물우물 쉴 새 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고 먹고, 맛있어 먹고, 불만 해소하느라고 먹고.... 그렇게 먹은 탓인지 지금까지 치과의사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단단한 오징어 다리가 잇몸을 든든히 자리잡게 하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억지논리) 하여간 오징어를 건조하면서 현지에서 먹는 다리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루 말린 오징어는 구워먹기에 좋고, 이틀 말린 오징어는 볶아 먹기에 좋고, 삼일 말린 오징어는 생으로 씹어 먹기에 좋은 줄 아바이 건조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외에 누가 알랴......

5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축항에 오징어 꼬쟁이를 한 웅쿰 쥐고 올라가다가 미끄러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꼬쟁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웅켜 잡았다. 손 등위로 뭔가 튀어 나온 것이다. 반대편 꼬쟁이의 끝이다. 손등 옆을 뚫어 엄지 쪽으로 관통한 것이 아닌가? 너무 아파 비명 칠 사이도 없었다. 겁도 났다. 주위에 사람도 없었다. 난감했다. 그러나 곧 용기를 내어 입으로 꼬쟁이를 물고 깊이 박힌 창을 꺼내듯이 뽑아 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얼굴에도 피, 손에도 피 범벅이 되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 같으면 병원에서 대수술인데 그때는 병원보다 무식한 용기가 앞섰던 것 같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보이니 “어떻게 그걸 뺏느냐? 큰일 날 뻔 했다”고 누나들의 기저귀로 붕대를 대신해서 둘둘 감았다. 다음 날 소독도 하지 않은 손은 두 배로 퉁퉁 불었다. 병원도 가지 않고 빨간 약, 당시 만병통치 외상약인 요오드징크로 양쪽으로 난 구멍에 발랐다. 그 손이 나은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가상한 용기를 무용담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놈의 잇까 꼬쟁이 내 손을 뚫다니...” 아바이 마을 사람만 아는 용어....


댓글목록

아마이님의 댓글

지금은 재미있는 무용담이지만 그땐 참 고생이 많았지요<BR>먹을거 못먹고 입을거 못입구 살았던 그시절 ...<BR>요즘 그시절이 그립네요 ..그래도 따뜻한 정이 있던 시절 ..

김미자님의 댓글

선배님!  선배님의글,  염치없게도 많이 기다리고 있었읍니다^^<BR>한 동안 뜸하셔서  어디 편찮으신줄(?) 알았읍니다...<BR>늘  고향생각 떠올리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BR>막바지 여름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