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대포동(반석)교회

4,591 2013.03.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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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일에 보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가치관이라고 판단해서.... 혹은 종교관에서 나온 행동....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만 좋다는 외고집으로 한 때 신앙생활을 하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광신자 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보다 열정적으로 산 적은 없었다. 군에서 제대후 한 체험의 사건을 통해 이성을 넘어서는 신앙생활에 몰입한 것이다. 그토록 돈 벌기를 원하는 엄마의 애원도 저버렸다. 자신이 고난을 받았기에 더 나은 세계로 나가야할 야망까지도 버렸다. 아니 미래까지도.... 단지 내가 좋아서.... 기뻐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 일이 바로 새벽에는 종치고 아침에는 마당을 쓸고, 낮에는 교회 안팍을 정리하고 꽃밭을 가꾸고.... 저녁에는 예배준비를 하고.... 새벽예배를 작정하고 365일을 빠지지 않겠다는 고백과 실천은 신앙을 넘어서 고집이었다.

7년간 교회에서 봉사하는 동안에 사건도 많았고, 잊지 못할 추억도 많았다. 그 몇 가지 중 대포동에 있는 반석(대포동)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대포동에는 교회가 없었다. 성암교회에서 그렇게 고생하시던 임안택 전도님이 전북으로 갔다. 숭실대학 영문학과를 나오고 한신대학을 나와 시골에 와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고생을 하셨다. 사례비는 거의 받지 못하고 거의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버티다 못해서 다른 곳으로 갔다. 훗날 그 목사님의 아이들이 의사도 되고 저명인사도 되었다.


그 후임으로 나보다 4살 많은 30살의 젊은 김환철 목사님이 오셨다. 젊은 의욕으로 ‘79년 초에 교회가 없는 대포에 교회를 세우기로 했다. 이름은 “반석교회”라고 했다. 주일 오후에는 어린이 예배, 화요일 저녁과 목요일 저녁에는 어른을 상대로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목사님과 함께 시작을 했지만, 처음 개척하자고 한 사람들은 용두사미... 다 뒤로 빠졌다. 목사님도 맥이 빠져 차차 내가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음이 있는 어떤 할머니의 잠실(누에고치) 창고에서 시작하였다. 당시 어린이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여름성경학교 때에는 100여명도 모였다. 보람도 있었다. 창호지에 어린이 찬송가 가사를 적은 괘도를 옆구리에 끼고 대포동까지 걸어 다녔다. 교회 반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동역자였다. 비가 오고 눈 오고 바람 부는 날이라도, 추운날 더운 날도 빠짐없이 다녔다. 점심에는 운 좋은 날 누가 짜장면 한그릇 사주면 먹든지 아니면 굶고 대포동 까지 걸어 다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어른들도 차차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신학도 하지 않았다. 열심이 신학보다 우선했다. 성경과 공과 책을 보면서 터득했다. 속초에 있는 교회의 부흥회를 쫒아 다니면서 은혜도 받고, 그때 주워 담은 성경 지식이 전 재산이었다. 열심 하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예수님을 열심히 가르쳤다.

 

      봄, 가을에는 어린이들과 야외예배를 가고 여름에는 성경학교를 열고 모래 백사장에서 뒹굴며 수련회를 하고 겨울에는 손을 호호 불며 성경학교를 하면서 아이들을 모았다. 때로 군부대로 위문공연도 갔다. 빛도 없다. 룰도 없다. 내 인생을 변하게 하신 그 예수님이 좋아서.... 어려운 줄 모르고 높은 행복지수를 가지고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1979년 초 가을이었다. 갑자기 교회가 없어졌다. 예배드리던 교회가 포클레인에 찍히고 십자가가 내려지고 간판이 내팽겨 졌다. 강단이 굴러 다녔다. 방석도 이리저리 흩어지고.... 교회가 다 부서진 것이다. 원인을 물었다.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할머니 집사님에게 물었다. 내용인즉,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가을에 속초 설악산에 온다는 것이다. 휴양 차 오는지 무슨 볼 일이 있는지 속초에 온다는 것이다. 설악산에서 속초로 가는 길이 너무 좁고 주변이 지저분하니 도로 정비 차원에서.....

 

    명이 하달되니 하루아침에 길거리 허술한 집부터 철거 대상이었다. 당시 누구의 명인가? 유신시절 왕의 명이 아닌가? 시에서 과잉 충성을 하는 자들이 도로 옆 허술한 집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잠실을 개조하여 만든 교회도 철거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도로변 허술한 집들이 날 벼락을 맞은 것이다. 너무 슬펐다. 좌절도 되었다. 권력이 무엇이냐? 서민의 집을 부수는 것이 권력인가? 민생은 보지 않고 서민의 집들을 대책없이 철거하는 왕명이라면 그 시대도 끝이 난 것이다. 너무 좌절하여 속초에 있는 본 교회에 와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 대포에 있는 반석교회를 더 해야 하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평시 보지 못하던 어린이 한 명이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가 끝난 후에 나에게 와서는

    “선생님 제가 설교 한번 해도 되나요?”

나는 어이 없었다. 기도를 멈추고 속으로

    “어린애가 무슨 설교냐?”

그런데 자꾸 이 아이가 한번만 설교 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했다. 너무 보채기에

    “그럼 한번 해 봐라”

고 했다. 아이가 큰 강단 아래 작은 강단 쪽으로 종종 걸음으로 나갔다.

    “선생님 이제 제가 설교하겠으니 잘 들으세요”

나는 궁굼했다. 애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니예요 사람이 교회지요”

손으로 교회 모습의 율동을 하면서, 손을 저어가면서 율동을 반복했다.

    “선생님 듣고 있어요. 제가 설교하고 있잖아요” 이어서

    “여러분 교회는 건물이 아니에요 사람이 교회이지요?”

신비했다. 어떻게 아이가 저런 설교를 반복한단 말인가?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서 배웠느냐”

고... 아이는

    “집은 서울이구요, 설교는 이번 여름, 우리 교회에서 성경학교 때에 배 운 것이예요”

너무나 천진난만하였다. 조금 있다가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교회 밖을 나갔다.

    “별 명랑한 자식 다 보겠네.....”

 

    그런데 그 아이의 설교가 내 귀를 맴돌았다. 교회를 잃고 실의에 빠진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친척 집에 왔다가 그 해 성경학교에서 배운 것을 나에게 들려주고 보여준 것이다.


왜, 하필, 이때에.... 그것은 하나님이 이 아이를 통해 교회의 개념을 알려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곧 교회라는 것을.... 보이는 교회를 잃고 슬퍼하며 좌절하는 나를 위로하느라고 하나님이 보낸 아이 같았다. 다시 용기를 내어 부숴진 강단과 십자가를 주워들고 와서 고쳐서 교회를 새로 시작했다. 마침 당시에 대포동 재건중학교가 폐교되었는데 성암교회의 양재선 교감 선생님을 통해 그 장소를 빌리게 되었다. 아무 조건 없이 쓰게 되었다. 지금의 ‘대포동 교회’가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그 해 늦 가을 어느 날 우리 학생들에게 설교를 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네메네 더겔 우바르신”라는 제목으로.....

이는 “끝났네 끝났네 너의 시대가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끝났네”이었다.


그 설교를 한 다음 주간, 유신시대가 끝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나도 감짝 놀랐다. 이름 없는 한 시골의 총각이 예언이 적중한 것일까? 너무 억지스런 나비효과(가령 아마존의 나비가 나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그런 식의....)이겠지?

 

    반석(대포동)교회를 떠난 후로는 다시 찾지 않았다. 고향에 휴가가면 지척이지만 일부러 회피하였다. 그렇게 16년째 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통진이라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서 목회를 하는 나에게 어떤 목사님이 찾아 오셨다. 예장 통합측 지금 대포동의 “대포동 교회” 목사님이었다. 젊은 분이었다. 어렵게 물어 물어 찾아 왔다는 것이다. 자기의 신분을 밝힌 목사님이 공손히 절을 하면서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너무 늦었습니다. 진작 인사하고 방문 해야 하는 것  이 원칙인데 우리가 결례를 했습니다”

라는 것이다.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내용인즉, 자기 대포동교회가 이번에 교회를 새로 짓고 권사님들 임직식을 한다는 것이다. 나를 이번 행사의 설교할 강사로 모시겠다고 교회에서 정했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교파에서도 목사님들이 많은데도..... 그것은 교회를 지으려고 터를 고르는 중에 구석에서 오래된 교회일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20년 전, 4년간 전영택이라는 무명의 총각이 그 일지를 썼고,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기록을 했는데, 집회 인원이며 활동을 다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자기와 교인들이 속초중앙교회가 이 대포동교회에 자금을 대 주어서 개척시켜 준 줄 알았는데 일지를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영택이라는 한사람의 말없는 헌신이 이 교회의 기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손수 찾아가서 이 행사에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그 공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대포동 교회에 가서 설교를 했다.


 

    설교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아내가

    “왜 나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속초에 휴가를 많이 왔어도 그 교회를 들르지도    않았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여보 무면허로 목사질을 했는데 무슨 자랑이냐? 또 다 말하고 자랑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지....”

    라고 했다.

 

  신학대학에서 공부할 때 안병무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공자 말을 인용하면서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세웠으면 머물지 않아야 한다”고.....


 

뭐 대단한 일이라고... 남들은 외국에 선교가서 목숨도 바치는데.....
댓글목록

임문희님의 댓글

전영택목사님 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성암교회 학생 임문희입니다. 반석교회 성경학교도 쫒아 다니곤 했던.....
언젠가부터 목사님 연락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경희랑 미영이랑 목사님이야기 많이 하곤 합니다. 연락처를 알고 계신분이 없어서 연락을 못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혹 연락 닿을까 몇자 남깁니다. 보시면 연락주세요...
임문희 010-9091-398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