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군대에서 바뀐 운명(3)

4,115 2012.05.27 23:52

본문

공개재판 후 며칠이 되지 않아 이제 큰 집, 즉 공포의 남한산성으로 옮기는 날이 왔다. 징역이 3,4개월쯤 되는 사람은 구치소에서 살지만 그 이상의 형기를 받은 사람들은 교도소로 옮겨진다. 육감이라고 하는 육군 교도소이다. 당시 6개의 동으로 되어 있는 육군 교도소는 구심점이 가운데로 지어진 특별한 형태의 건물이다. 공중에서 보면 6개의 뿔이 달린 불가사리처럼 생겼다. 가운데에서 감방 전체를 통제하도록 되었었다. 각 동에는 양쪽을 마주 보도록 12개 정도의 칸, 24칸으로 되어있는 복도식이다. 각 칸에는 24명 정도 있으니 군에서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거기 가서야 알았다. 1동에는 사형수와 무기수, 2동에는 장기수, 3동에는 방위, 또는 종교적 이유로 군을 기피한 여호와 증인들, 4동과 5동에는 탈영병과 각종 군범죄, 장교 출신의 범죄자들, 6동에는 상고를 한 미결수들 있었다. 나는 군사 고등법원에 상고를 했기에 6동인 미결수 방이었다. 
     
      다시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덜덜 거리는 군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예상한대로 기합과 고함소리가 고막을 찢을 정도였다. 군기를 잡는 것이다. 또 얼마나 맞아야 신고식이 끝날까 걱정이 앞섰다. 사람이 참 모질다.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고 맞으면 덜 아프듯이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정신 차리고 서니 어떤 기합도 견딜 수 있었다. 정신없이 기합을 받고 방으로 배치되었고 육군교도소에서 주는 죄수복을 입었다. 런닝, 팬티, 내복, 겉옷.... 어디든지 ‘죄수’라고 낙인이 찍혔다. 아니 ‘죄수’라고 도배를 했다. 탈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나? ‘죄수’라는 옷을 오래 입다보니 정말 내가 죄인이 되었다. 그래 나는 한참 죄인이야...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을꺼야. 지금 아니면 언제 나를 돌아 보겠어? 

    당시 육군 교도소의 하루 일과는 다른 군인보다 한 시간 빨리 일어난다. 아침 4시 50분에 기상한다. 죄를 지은 군이 일반 군보다 편히 잘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게 타당한지는 만든 사람만이 알겠지....  10분 안에 후닥닥 점호준비를 끝내고 죄수 확인을 끝낸다.  살벌한 각방 점호가 끝나면 앉아서 고개는 15도 상방, 눈동자는 전면 주시, 양팔은 무릎 위... 도를 닦는 사람들 같다. 가끔 뒤에서 먼저 온 죄수들의 발꿈치가 졸거나 삐뚠 자세에 거침없이날아 온다.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2시간 부동자세로 허공을 쳐다보노라면 눈에 쥐가 날 지경이다.
 
      솔솔 콩밥 냄새가 풍겨오면 아침 7시가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온 감방을 감도는 밥 냄새가 밤새 배고파 요동치는 배를 더욱 흥분시킨다. 개들이 주인이 밥을 주면 꼬리치는 이유를 알겠다. 번개 같은 배식 시간임에도 왜 그리 동작이 늦어 보이는지....  콩을 섞은 맛없는 보리밥, 쌀은 누가 다 빼먹었는지... 국자 같은 틀(가다)에 찍어 나온다고 해서 '가다 밥'이라 부른다. 멀건 국... 정말 파리도 먹을 것이 없다고 조롱하고 날아 갈 정도이다. 사람이 먹는 밥과 국이 아니다. 영양실조가 눈에 뻔하다. 그래서 면회할 때 1등 영치품이 버터(빠다)이다. 밥에 양껏 비벼 먹는다. 반찬이 거의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영양보충을 한다. 

      아침이 되면 하루 노역이 시작된다. 벽돌 만들기, 굽기, 각종 사역, 고급장교들의 사사로운 수익 사역까지... 그래도 무장 헌병의 감시 하에 밖에 나가는 날은 행복한 날이다. 시간을 잡아먹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낮에 1시간의 운동 시간이 있다. 그때에는 모든 재소자들이 밖에 나와 운동을 한다. 가끔 아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 안에서 나를 판 분대원들도 만났다. 근황도 묻고, 그 웬수 강 이병의 소식도 들었다. 이제 겨우 구멍 뚫린 가슴이 나아서 이곳 교도소에 온다는 것이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남의 인생을 이렇게 망가 버린 놈, 용서가 안되는 놈... 그러나 그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무기징역을 받았으니...
   
      육군 교도소 안에서 사람들이 이렇게도 영악한가를 깨달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적어본다. 그 엄격한 통제의 틀 속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재간이다. 담배가 감옥에 들어 오는 길은 면회 온 사람들에게서 받은 담배를 옷의 솔기에 몰래 숨겨 온다. 또 감시하는 고참 헌병들과의 모종의 거래이다. 그 안에서는 고가로 팔린다. 결제는 영치금이다. 또 다른 감방과의 거래도 이루어 진다. 복도를 마주보고 있는 죄수들이 손으로 수신호를 한다. ‘여기 담배가 얼마큼 있으니 얼마에 사겠느냐?’고... ‘얼마에 사겠다’ 하면 거래가 성사된다. 복도가 꽤 넓은 데도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담배개피들... 귀신같다. 어떻게 창살 사이로 담배가 날아다닐까? 그러니까 범죄자들이지....

    담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냥이 있어야 하는데 성냥 한 개피를 면도칼로 4등분으로 자른다. 4분지 1의 성냥개피로 불을 당기는 기술은 신기(神技)에 가깝다. 구석에 짱박아 넣은 갈색 종이에 성냥개피가 닿자마자 불이 일어난다. 그 엄한 감시가 있음에도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물론 창살 사이로 한쪽 눈을 바짝대고 교대로 헌병을 감시하는 죄수가 교대를 하면서 망을 본다. 헌병이 가까이 오면 “피(P)" 한다. 헌병(Militery  Police)이란 뜻이다.
 
      또 다른 방법은 라이타 돌을 숨겨 들어와 칫솔 뒤에 박아 놓고 면도칼로 라이타 돌을 긁어 불을 켜는 기술이다. 이때 불을 피우는 재료는 군인 담요에서 살살 뽑아 모은 털실이다. 또 구석에서 긁어모은 먼지가 불을 당기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분해되어 숨겨 놓은 담배는 책장을 찢어 즉석에서 말아서 피운다. 어떻게 반입이 금지된 물품들이 감방 안에서 돌고 도는지... 헌병들의 비호가 윗선까지 상납 고리로 이어져 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어느 날 P를 잘못서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맞은 적이 있다. 한 두 시간씩 철장사이로 한 눈으로 P를 감시한다. 오랫동안 보면 눈알은 사팔뜨기처럼 되고 얼굴에는 큰 철장 자국이 남는다. 그만큼 긴장하고 보니까...  옛날에는 감옥을 지하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옥(地獄)이라 한다. 나날이 지옥인 것이다. 그 안에서의 시계는 늦게 간다. 국방부 시계보다 더 늦게 간다.  심리적인 압박의 시간인 것이다.
   
      망부석처럼 부동자세로 앉아 있으면서도 구치소에서 가지고온 기드온 성경을 틈나는 대로 읽었다. 영어 단어라도 잊지 않으려고.... 나보다 며칠 먼저 온 옆자리의 죄수는 서울대학 출신이다. 군 생활이 힘들어 휴가 갔다가 탈영을 했다는 것이다. 헌병에게 잡혀 복귀하여 교도소 신세를 졌는데 정말 실력이 아깝다. 가끔 막힌 단어를 물으면 서슴없이 실력 발휘를 한다.  옆자리 장교출신은 월남전에서 군수품을 팔아먹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서 들어왔다. 뻥인지 모르겠지만 잘 나갈 때는 탱크까지 팔아 먹었다고 한다. 오만 잡탕의 인생 막장들이 모인 교도소...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항상 험악하였고 살벌하였다.

      12월이 되니 교도소의 분위기가 추위와 함께 더욱 살벌하였다. 1동과 2동에서 들이리는 찬송가는 찬송가라기보다는 애환이 담긴 절규였다. 특히 12월 중순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달이라고 한다. 헌병도 죄수도 신경이 곤두선다. 누군가 죽어야 하니까..... 집단 히스테리, 우울증 기간인 것이다. 겨울리 춥지만 더 춥게하는 것은 죽는 달이 온 것이다. 어느 날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교도소 온 죄수들이 바깥 사역이나 운동 출입이 금해졌다. 누군가 죄 값을 목숨과 바꾸는 날인 것이다.
    훗날 들리는 이야기인데 군 사형수는 총살로 단죄한다. 이때 교도소에 근무하는 헌병 중 차출되어 형을 집행한다. 그러니 누가 그 일을 좋아하랴....  10여명의 헌병 중 2명에게만 실제 총알을 넣고 나머지는 공포탄을 주는데 누구 총에 맞아 죽은 지 모른다. 다만 모든 헌병들이 내 총은 아니라고 믿을 뿐이다.

      고법에 상고 중이라 오래 교도소에 살았지만 미결수였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규정대로 하사 월급은 나왔다. 별로 크게 쓸 일이 없지만 영치된 돈으로 한 달이면 출소할 분대원들의 겨울 내의를 여러 벌 샀다. 저들이 무슨 죄가 있나? 나와 인연을 맺었다는 것뿐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추운 한 달이라도 저들에게 내의를 두텁게 입히는 것이다. 그나마 출소의 기쁨과 함께 내 마음을 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휴식시간에 건네주었다. 눈물로 받는 저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대장을 팔아 일찍 나가는 미안한 마음도 있겠지.... 옷깃을 스쳐도 이 땅에 한 시대를 같이 산 인연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적은 돈으로 잘한 것 같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평시처럼 일찍 일어나 부동자세로 허공을 보고 있는데 뒷줄의 감방장이 일어서서 정열된 우리 앞으로 나왔다. 속으로 오늘은 죽는 날이구나. 뭐가 못마땅해서 트집 잡으려고 나오는가? 잠자리를 잘 못잤냐? 꿈을 잘못 꾸었는가? 그런데 난데없이 소리지르며

      “야 가짜 신자들!  오늘은 교회 갈 생각을 말아. 가는 놈은 죽을 줄 알아!”

      협박인지 발작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러지 않아도 육군 교도소 안에서 교회는 무서운 공포를 잠시나마 해소하는 피난처이다. 가서 졸고, 또 운이 좋으면 간식도 먹고... 졸면서도 “아멘 아멘”하면 국방부, 아니 교도소 시간이 2시간 정도 줄어든다. 한 감방 24명 중 절반 이상이 간다. 그래서 교도소 교회는 언제나 만원이다.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필요에 의해서....
 
      그 신앙이 가짜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 임에도 서로 묵인한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거기서 세례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훗날 “네가 어디서 세례를 받았느냐?”고 질문하면 자기의 전과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군목이 세례 받을 자를 신청해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날 감방장이 화가 난 것은 남아서 P볼 사람이 없이 교회에 가기 때문이다. 자기네들이 담배를 피는 것을 감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전에 담배를 피우다가 헌병에게 걸려서 곤혹을 치렸다. 보복 차원으로 그날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의외의 말을 한다.
 
 “단지 한 놈만 교회가도 좋다.”

 그 한 놈이 바로 나였다. 이유인즉 밤에 잠을 자는데 내가 잠꼬대로 “주여 주여” 했다는 것이다. 자기 논리로는 나만 진짜 교인이라는 것이다. 기가 약해 평시에도 헛소리를 지른 덕을 본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감방장은 여러 번 들었다는 것이다. 또 전에 출소하기 직전의 부하들에게 자기 월급으로 겨울내의를 사준 것을 보면 진짜 ‘예수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도 들먹이면서 졸지에 특전(?)을 받았다. 아니 감방장이 베푼 것이다.

      이럭저럭 원하든 원지 않던 나는 뭔가 끌려가고 있었다. 무당 푸닥거리 문화 속에 살던 아바이 마을에서 삼신 할머니에게 빌고, 밥 먹기 전에 바다에 ‘고스레’ 밥을 숟가락으로 던져 죽은 영혼을 달래던 내가 아닌가?  바다가에서 예수 “예”자도 모르고 살던 나에게 억압된 장소,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 군대가 내 운명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