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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태안에 가다

9,924 2008.02.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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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상을 뒤로하고 자그마한 전도단체에서 태안반도에 가서 기름유출을 대비한 봉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12월 13일 기름유출 7일째 되는날, 늦게 난 아들 생일날, 작은 봉고차에 1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태안반도에 갔다. 사전에 태안군청과 연락이 되어 봉사할 장소를 물색하고 봉사할 장소를 선택받았다. 모 해군 소기지가 있는 해변이었다. 날씨는 낮은 온도와 함께 폭풍주의보가 내려서인지 바람이 심했다. 잔득 웅크린 채로 비옷과 장화. 장갑, 그리고 마스크를 지급받고 바닷가로 향하였다. 바다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푸른 파도대신 검은 파도가 해변을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온통 기름범벅이 된 갯벌, 바위, 방파제, 바닥까지... 바다가 아니라 기름이 바다며 파도가 아니라 검은 기름파도가 해변을 때리는 것이다. 이 장소가 선거에 이용될 가치의 장소가 아니라 어민들이 공존하며 살아야할 삶의 현장이 아닌가 ?

그런데 누구의 잘못으로,, 아니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사람들의 잘못으로 그 아름다운 강산이 기름으로 멍들어가고 문명의 이기를 같이 공유해야하는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더욱 반성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 태안반도 ‘어은돌’을 사랑하여 일년에 몇 차례씩 와서 고기를 잡던 장소가 아닌가. 낙시질이 그렇게 잘된다고 선전하던 그 장소가 이렇게 검게 물들어가고 망가졌으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으로부터 수혜를 받고 또 어려서부터 바다를 사랑하던 나로서는 그 수혜의 대상인 이 바다에 무엇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회강단에서 교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일과 종교를 떠나서 해아래 자연의 헤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일조를 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자연사랑에 대한 눈물, 돌을 뒤지며 게를 잡고, 그 돌위에서 낙시질을 하고, 갯모래를 파서 조개를 캐고, 돌위에 붙은 굴을 따서 먹던 이용대상의 자연이 기름범벅이 된 것이다. 이용만하던 자연을 치유한다는 생각, 흡착포를 가지고 바위구석 구석을 닦아내는데 왜 그리 눈물이 흐르는 것까? 이 나이가 들도록 자연을 사랑해보지 못했던 내가 돌 하나를 정성껏 닦아보지 못한 회한일까? 아믓튼 열심히 일했다. 순서는 없다 흡착포를 바다에 던지고 무조건 삼지창 같은 기구로 사정없이 거두어 내는 일이다. 거두는 흡착포 마다 기름을 머금어 3-4배 무거워졌고 거둔 것은 작은 자루에, 작은 자루는 더 큰 자루에 모았다. 허리 펼 사이조차 없이 속에서는 땀이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자연에 속죄가 된다면 이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더욱 눈시울을 적신 것은 한 지역 어부의 땀 흘리는 수고였다. 그는 방수복을 입고, 장화를 신었지만 영 균형이 맞지 않았다. 장화의 방향이 뒤틀린 것이다. 즉 몸이 불구라서 뒤틀린 발에다가 장화를 신었기 때문에 장화의 방향이 반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지역을 살리겠다고 절뚝거리는 발로 움직인다. 지역사람들(그래봐야 늙은이만 남은)과 함께 자원봉사온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될 비닐하우스를 치는데 그 열심히 대단하다. 할머니 한분은 일주일 내내 집도 거들어 볼 새 없이 매일 돌을 닦는다고 한다. 짧은 봉사 시간내내 허리를 펴지 않고 일하게 하는 동인(動因)들이었다.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아픔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천만의 10분의 1만이라도 참여한다면 이 강산도 치유하리라 본다. 늙은 어민들에게 뻘은 천혜의 삶의 터전이다. 생계수단이다. 나가면 무엇이든지 얻어 가지고 온다. 건강을 위해서도... 빨리 치유되어야 한다.

기름이 범벅된 돌을 닦다가 이 재앙에서 아직 살아있는 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작은 게였다. 그러나 기름범벅이었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도망가려고 한다. 달아나는 게를 잡아 정성껏 닦아 주었다.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놓아 주면서 성경 에스겔서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피투성이라도 살리라. 기름투성이가 되더라도 살리라. 지정학적으로 3개 대륙의 틈바구니에서, 신흥 열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처절한 삶을 이어갔던 이스라엘, 고난 속에서 신앙의 꽃을 피도록 냉정하게 내동이쳤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했던 하나님의 희망의 메세지가 아닌가? 날벼락도 이런 벼락이 어디 있는가? 누구에 의해서, 무슨 잘못으로 이렇게 고통당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손길을 통하여 치유하실 것이며 또 영겁의 세월 속에 자연의 치유능력을 우리는 믿는다. 일년이면 365번 하루에 두 번씩의 조수가 오르내리면서 730번의 세척이 있을 것이고 10년이면 7300번 100년이면 7만3천번의 세척이 있을 것이다. 원유를 수억년 품고 있었던 하나님이 아니신가?

며칠 뒤 대학졸업반 아들을 데리고 또 현장에 갔다. 우리세대가 이용했던 자연을 훼손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훗날 다음세대는 더 많은 아픔을 겪을 것이다. 아들도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했다. 봉사하는 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사회가 한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에 조심하여 자기의 소임을 다해야할 것이다. 누구하나의 일탈이, 무책임이 전체의 피해로 이어지는 세상이 아닌가? 특히 태안 기름유출사건은 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 안전 불감증, 폭탄테러, 불안한 세대에 살면서도 우리세대는 이 자연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그 피해자일 것이다. 우리가 누린 그 혜택의 찌끼 때문에 고생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 문명이라는 편의를 위해 사용된 자원의 폐해를 다음세대가 버겁게 감당해야하까..

태안반도여 기름투성이라도 살리라! 이 나라에 자원봉사자가 있고 노력하는 백성이 있기에 너는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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