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청호동을 아십니까?

15,119 2007.03.06 22: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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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에 가면


전국에서 단 두 대 뿐인 [갯배]가 있습니다.


두 대가 연신 오고 가지요.


배 삯은 한 번 건네는데 200원이랍니다.


지금은 동명항과 청호동 사이에 다리가 생겨


자동차로 건너 갈 수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청호동을 갈 수 없었지요


갯배를 타고 내리면 드라마 [가을연가]로 유명한


[은서네 수퍼]가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 맞은편 집에서


옛날 먹던 맛이 그리워 [도루묵 생선찌개]를 먹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 미리 말씀드렸지요.


어릴 적  잠시 속초에 산 적이 있었는데


도루묵맛이 그리워 찾아왔다고


그랬더니 알이 통통 밴 도루묵을 듬뿍 넣고


찌게를 끓여주셨습니다.


맛 또한 일품이어서


정말 맛있게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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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호동에 대한 시 몇 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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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양귀비/ 김승기




다시 볼 수는 있을까


너를 보겠다는 성급한 마음에서 저지른 뜀박질


한 순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어이없게도 허리가 잘리고 말았구나


막혀버린 血脈


마비된 팔다리


奇經八脈이 모두 끊어진


성치 못한 몸뚱이로는,


사진으로만 어루만지며 그리워할 뿐


네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구나


언제쯤 얼굴 볼 수 있을까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얼굴


잠에 들면 꿈이라도 꾸어질까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살아서 만날 수는 있을까


그리움으로 못이 박힌 가슴 너무 아파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는구나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득한 절망의 세월


몸부림으로 지새우는 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네




지금도 속초 청호동의 아바이 마을에는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 이산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을 삭이며


늙은 가슴 가슴마다 두메양귀비를 피우고 있다


 


 


 청호동 새섬/이상국




청호동 방파제 너머 떠다니는 섬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장화를 신은 채 청호동 사람들마저 잠들고


흥남이나 청진물이 속초물과 쓰린 속으로


새섬 근처에서 캄캄한 소주를 까다가 쓰러지면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섬을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헐떡거리며 짐승처럼 날다 바다의 벽에


다치고 돌아와 죽은 듯이 잠드는


청호동 방파제 너머 새섬을 사람들은 모른다.


청호동 사람들의 동해 밑바닥 국적 없는 고기를 잡거나


모래위에 집짓고 아이들을 낳는 사실을


믿거나 믿지 않는 건 무서운 일이다.


나룻배 끊기면 흐르는 땅 모래 껴 앉고 아바이들 잠드는


청호동 방파제 너머 이남 물과 이북 물이


야 이 간나이 새끼 마이 늙었구만 하며


공개적으로 억세게 무너지면


동해 속으로 사라질 청호동은 잠시 객지일 뿐이고


분명히 객지여야 한다.


청호동 방파제 너머 청호동 사람들의


흐르는 섬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이상국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 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청호동 아바이/장승진


 


                                 


엊저녁 청호동에서 마신 소주는


그리운 바닷물인 줄 알았다


어쩌면 그 놈이 마지막 마시고 간 바닷물도


십중팔구 씁스름한 소주 맛이었을지 모른다


휘청 이는 바닷물에 떠서


잠기는 밧줄 건져 올리며


힘 있게 뱉아내는 소주 기운이


매양 이승의 아침으로 닥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판장 죽은 생선들


감지 못한 눈동자 핏발 같은 햇살로


따스해져 오는 속초의 지붕들과 창문들을


아슴아슴 바라보는 것 또한


낯설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엊저녁 청호동에서 마신 소주는


정말 내 고향 바닷물인 줄 알았다


부러진 나무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도


젊은 날 네녀석들 웃음소린 줄 알았다


이 땅에 새로 심은 나무들이 자라고


뜰 앞 꽃 덤불도 해마다 줄기를 키우는데


술깨는 아침이면


동전만한 크기로 가물대는 땅


고개돌려 따라가면


무더기로 내다버린 눈동자들 뿐인 바다


바람만 드나드는 눈자위에


하나 가득 다시 해장술을 따르면


아바이 아바이 고향이 어데요


아바이 아바이 타향은 또 어디메요


갈매기들 끼룩대는 소리에


새로 돋은 하루가 물살로 감긴다




 청호동 일기/ 김영준


 




물은 모여도 이곳에서


모래를 끌지 못한다




새들은 새섬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고


주둥이 가득 거품만 물고 있다




작은 아버지가 아버지의 술잔을 달래고 있을 때


고인 물처럼 점점 어두워가는 파도가


댓글목록

김명림님의 댓글

청호대교가 생기 전, 그 곳을 다녀와 쓴 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BR>초등학교 2학년 부터 중학교 2학년 까지 제가 살았던 그리운 곳,<BR>아바이 마을 홈피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BR>건강하세요.<BR>

성수님의 댓글

성수 이름으로 검색 2007.03.07 00:00

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BR><BR>이렇게 멋진 시와 글을 올려 주시고 그리운 곳의 그리움을<BR>간직하고 계신 님의 따뜻한 마음 과 밝은 모습의 사진이 참<BR>보기가 좋아요 <BR>항상 우리 속초와 투박하지만 인심좋고 정이 많은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BR>많이사랑해 주시고 홍보도 부탁 드립니다.<BR>건강과 하시고자 하는 모든일이 항상 이루어지길 빌면서......<BR><BR>@ 아직 다리가 완공되지 않아 동명동과 연결 도로가 없음을 <BR>알려드립니다.(

청호16회님의 댓글

사진과시.글.잘읽고보았어요..감사한마음과함께우리동네청호동의그리움이밀려오네요..건강하세요..

대조영님의 댓글

청호동을 주제로 한 시가 이렇게 많은줄 몰랐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양귀비2님의 댓글

양귀비를 처음 보았는데, 증말 이브긴 이쁘다<BR>그래서 양귀비 인가 ...

바다님의 댓글

바다 이름으로 검색 2007.04.27 00:00

언제나 제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곳입니다.<BR>속초...하고도...청호동.....<BR><BR>시 몇편 담아갈게요.^^<BR>

이상숙님의 댓글

저는 마흔이 훌쩍넘어지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청호초 다니다가 그해 여름에 원주로 전학 갔어요 어린시절 혼자있어야 해서 늘외로움이 많았답니다 지금도 청학동.초가집 언덕위에 있는 곳 바닷가가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