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실향민 문화유산

수복기념탑

1,236 2017.03.1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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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기념탑은 전쟁기념비 이라기보다는 실향민의 한을 표현한 분단의 상징물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종전되고 속초지역이 수복된지 3년만인 54년 5월 10일 당시 1군단과 속초읍, 그리고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수복기념탑을 세웠습니다. 전쟁기념물로 수복지구 민간인들이 나서서 스스로 세웠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가치도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따리를 끼고 있는 어머니와 북녘하늘을 가르키는 어린 아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고향땅을 바라보는 애절한 동상은 더이상 고향땅으로 올라 갈 수 없는 실향민의 한과 통일의 염원을 대변했습니다. 이 모자상 조각은 당시 1군단소속 군인인 박칠성씨가 제작했으며, 탑신에 새겨져 애절한 사연을 담은 모자상부(母子像賦)는 당시 1군단소속인 장호강시인(한국참전시인협회장)이 지었습니다. 

 

83년 강풍으로 파손된 수복기념탑은 다시 시민의 힘으로 복원되어 속초시민의 마음속에 수복기념탑이 통일염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83년 4월 27일 새벽, 동해안에 불어닥친 강풍으로 모자상은 철저히 파손됐습니다. 그러자 고향에 가지 못하는 한을 안고 수복탑 모자상이 자살했다, 실향민들의 슬픔이 더욱 커졌다, 어부들도 귀항길이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수복기념탑의 파손에 대한 시민들의 안타까움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범시민적으로 수복기념탑복원건립위원회(위원장 김종록)이 구성돼 시민성금 모금에 들어갔으며, 결국 눈물어린 시민의 정성으로 그해 11월 17일 수복기념탑은 다시 제막식을 갖게 됐습니다. 

 

모자상부 母子像賦

                                              시·장호강張虎崗

첩첩 높이 솟은 산봉우리 앞을 가리고
굽이굽이 험한 길 아득히 멀어도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오손도손 망향의 이야기 나누며
북녘 고향 땅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 비바람 눈보라 휘몰아치고
어느 짖궂은 길손이 그 앞길 가로막는다 한들
두 생명 다하도록 낮도 밤도 없이 가야만 하느니

도대체 그 누가 날린 저주의 화살일까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어느날 땅과 바다와 하늘이 둘로 갈리고
동족상잔의 처절한 피바다의 싸움으로
그 아름다운 강산 두고 온 옛집이
젯더미로 변했다손 치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랑 피땀 흘려 일군 밭과 논
그 정든 삶터를 찾아 마냥 가야만 하느니

뼈에 저리도록 허구한 고된 날이
본시 살결 고운 북녘 아낙네 예쁜 얼굴에 주름끼 고이기로서니
삼단 검은 머리에 흰 카락 불어나기로서니
항시 머리 위에는 넓고 푸른 하늘이 열려있기에
모진 풍파 욕된 세월에도 손과 손 굳게 붙잡고
통일의 새날을 겨누어 줄곧 앞으로 가야만 하느니

북으로 오직 북으로
고향 길 더듬는 네 다리는 비록 가냘프지만
성난 해일 거센 폭풍에
깊이 쌓이는 모래밭 헤쳐가며
걸음걸음 내딛이는 참된 보람에
줄어든 보따리 소중히 옆에 끼고
오늘도 동해 갈매기 노래를 엿듣노라면
불현 듯 아롱진 향수가 담뿍 어리는 그 길을
쉬지 않고 가야만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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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6월 25일자. 미군정시절 수복지구에서 발간된 일간지 동해일보에 실린 수복기념탑과 모자상부 시.

지금의 모자상부 시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신문 사진 속의 모자상은 그 모양이 지금과 다르다. 1954년 처음 세워진 수복기념탑은 강풍에 파손되어 1983년 11월 17일 시민모금으로 다시 복원되면서 모자상의 형태가 바뀌었다. 아이가 한쪽 팔을 들어 북녘 고향하늘을 가르키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탑에 새겨진 “모자상부” 시도 분량이 대폭 줄어 다른 시처럼 바뀌었다. 신문에는 바뀌기 전의 모자상부 시를 확인할 수 있다. 시에는 어머니와 아이 철이의 대화가 나온다. “어머니! 우리집 뜰앞 복사꽃도 이젠 피었겠지?”

“아무렴 제비도 처마끝 깃에 나래를 쉬일꺼야.”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아 계실까?”

“아무렴 너를 만날 때까지는 살아 계셔야지.”


모자상부(母子像賦)
∼속초읍 중앙로타리 수복기념탑에 부쳐∼

「뼈에 저리도록 허구한 고된 날이 본시 북녘 아낙네 살성 좋은 얼굴에도 주름끼 고이게 하기로서니 삼단인양 검은 머리 흰 카락 끼이게 하기로서니 푸른 뫼 구름 지니고 살 듯 항상 머리 위에는 넓고 푸르른 하늘이 퍼져 있기에 갖은 풍난 욕된 시름에도 곧은 뜻 굽힐 줄 몰라 끝내 벅찬 젖가슴 두던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랍니다.

 " 어머니! 우리집 뜰앞 복사꽃도 이젠 피었겠지?"
 " 아무렴 제비도 처마끝 깃에 나래를 쉬일꺼야."

오른쪽 팔에는 고로웁지 않은 세월과 더불어 낡고 줄어만 가는 봇다릴 망정 그래도 악착 같이 삶을 간직해야 할 다사로운 미련이 씨웠거늘 그 어느날 가마귀 우짖는 산모퉁이나 이끼 푸르른 바위 틈에 못내 병들어 쓰러지는 한 있다칠손 목숨처럼 함부루 내 버릴 수 없는 정에 무거워 새라 새날이 다가올수록 소중스럽게 끼고 섰는 것이랍니다.

 "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살아 계실까?”
" 아무렴 너를 만날 때까지는 살아 계셔야지."

왼쪽 팔로는 짐짓 이 땅의 태를 받은 어린이란 다- 그렇듯이 종내는 조국의 통일을 이룩해야 할 피비린내 풍기는 운명을 물려 받아야 하기에 앳된 눈동자 샛별처럼 반짝거리는 이 나라 아들의 가냘픈 주먹을랑 둘도 없는 단 하나의 거창한 희망처럼 줄곧 붙들지 않고서야 산의 고사리마냥 움켜 잡지 않고서야 쓰라린 가싯길 결코 잊고 갈 수는 없는 것이랍니다.

 " 어머니! 내가 어서 커서 늠름한 국군이 돼야겠어."
 " 널아 아버지 원수는 네가 반드시 갚아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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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1961년)에서 찾은 속초 수복기념탑 옛사진, 지금의 탑과 모양이 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