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20-우리들의 설날

6,611 2010.02.0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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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음력을 달력의 기원으로 사는 동양권의 어느 나라든지, 우리나라 어느 지역이든지 음력 1월1일 정월 초하루 날은 설날이다. 한때 통치자들의 이념에 따라 신정, 구정으로 나누고 여론 따라 변하는 바람에 서민들만 고통을 받았지만.... 이 설날 명절에는 또 고유의 풍습대로 축제로 보낸다. 설이란 말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는 한자어로 표현되고, 원일(元日) 또는 신원(新元)으로도 표기된다. 이 설날의 뜻은 나이를 뜻하는 우리의 고어 ‘살’에서 나왔다는 학설과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학설과 새로 솟아난다는 뜻과 마디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살(sal)'에서 기원했다는 학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무식이 풍부할 때에는 눈이 올 확률이 높아서 설(雪)이라고 한 줄 알았다.

설날이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보다 설날이 왔다는 그 자체가 축제이다. 아바이 마을의 어릴 적 내가 경험한 설은 그야말로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은 날, 쉬어서 좋은 날, 새 옷 입을 기대로 가슴이 부푼 설, 세배 돈 받아 내 소유의 돈이 생겨서 좋은 날, 나이 한 살 더 먹게 되서 좋은 날...... 지금은 나이가 원수이지만 어려서 한 살 더 먹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지는가? 세월이 왜 공평하고 일정하게 흐르는가 했더니 늙은 사람들의 제어 하려는 갈망과 젊은 사람들의 추진 소망이 조화를 이루어서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억지논리)....

아바이 마을의 설날이 가까워 옴은 집집마다 명태 순대가 익어갈 때부터이다. 명태순대가 익는다? 그렇다. 감이 익듯이 순대도 익는데 설날 제사를 위해 열 마리 아니면 한 두룸씩 주렁주렁 달아 놓는다. 명태 순대는 명태의 멱(아가미 부분)을 따고 속을 집어 넣는다. 속은 명태 내장(알, 간, 창자)과 돼지고기, 두부를 삶아서 다진 것과 김치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해서 힘껏 통처럼 된 명태 뱃속으로 터지기 직전까지 강제로 집어 넣는다. 마무리 되면 입구를 바느질로 꿰메어서 추운 덕장 한구석에 널어 놓는다. 우리 엄마는 맛있는 속을 잘 만들어서 외삼촌들은 자기 집 것보다는 누나가 만든 우리 것을 탐하여 축을 낸다. 이 순대는 영하의 대한 추위에 얼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양념국물과 눈(雪)물이 명태 살 속으로 스며 들어간다. 명태꽁지 부분이 노르스름하게 되며 꼬리 짤린 부분으로 국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질 때 상주 꽃 감처럼 맛이 절정을 이룬다. 순대를 설날에 먹도록 초점을 맞춘 것과 보름에 기준해 널어 놓은 것이 있다.

어느 해 하두 맛있어 보이기에 덕장 위에 올라가서 속을 고양이처럼 파먹은 적도 있다. 엄마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희생 양으로 애꿎은 고양이가 대신 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신성시되는 조상께 드리는 제물을 사람이 먼저 먹었으니.... 지나고 보면 다 산 사람이 먹자고 하는 짓 아닌가. 그리고 이 극상품 순대를 설날 전날(이브)에 굽는다. 약한 불로 탈세랴 정성껏 굽는다. 냄세가 죽이고 침은 벌써 목안에 가득한데 혹시 꼬리라도 주는가 싶어 기다려도 조상께 제사 드리기 전에는 얼씬도 못한다고 야단 맞은 적도 있다.

엄마에게 “꼬리는 먹으면 안돼” 칭얼댄다. “이 간나 새끼야 그렇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데 철딱서니가 없니?” 그럼 나는 “조상들도 꼬리는 싫어할텐데.... 그리구 아직 하루가 남았는데...” 하면서 입을 쭈빗 거리던 생각이 난다.

섣달 그믐날은 엄마도 생선장사를 마치고 늦으막하게 들어 온다. 저녁이 기대된다. 왜냐하면 새옷(?)을 잔뜩 사오기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에 언제나 시장에서 떨이 옷, 신발, 그걸 노린다. 그래도 새것이다. 지금 말하면 바겐세일, 서울 돌고, 지방 돌고, 기준 치수 빠지고.... 그래서 큰 것은 한번 사면 3년 이상 입을 정도로 큰 것, 그래서 4학년 설에 산 가로 줄무늬 세타는 6학년 졸업까지도 나의 유일한 유니폼이 되었다. 우리 동창은 날 기억하기를 가로 줄무늬 세타만을 기억한다기에 앨범을 보니 역시 졸업사진 찍을 때도 그 옷을 입고 있었다. 3년간 키가 자라지 못해서 바꿔 입지 못한 탓은 하지 않으면서.... 그 때 인기 상품은 검정 고르뎅 바지, 왕눈깔 만한 단추가 있는 잠바, 나이롱 양말, 새 내복, 신발 등은 명태 낙시 일에 쩔은 낡은 옷을 교체하는 날이 바로 설날 전날인 것이다.


설날 아침 드디어 D-Day가 왔다. 새벽에 차레를 지낸다. 마치 귀신이 와서 먹는 것처럼, 밥 떠 놓고 절 한번, 물 떠 놓고 절 한번, 밥을 물에 말고 절 한번, 형과 나는 연신 절을 한다. 쪼르륵 거리는 배는 벌써부터 제밥에 가있다. 오랜 만에 먹어볼 흰 쌀밥, 계란들, 명태순대, 한과, 등은 시퍼렇지만 속이 빨간 송어. 큰 왕눈의 열갱이, 기름진 이면수, 빠알갛게 삶아진 문어와 사과, 배.....
‘어느 것부터 먹어야 할까’ 절 할 때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점찍어 둔다. 절이 다 끝나고 상이 차려지면 아침부터 허겁지겁 포식이다. 오늘은 양이 많아서 형과 다툴 것도 없다. 그렇게 먹고 싶은 계란 서너개를 꺽꺽 거리면서 먹는다. 그리고 시원한 국을 이밥에 말아 먹는다. 이 국은 콩나물과 무우를 채 썰어 넣은 것에다 속초의 어린 햇 미역, 그리고 소고기국을 넣어 끓인 것이다. 거기에다 한 맺힌 흰 쌀밥..... 환상적 메뉴가 설날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설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우리 집 안사람은 지금도 “멀건 그 국이 뭐가 그렇게 맛이 있느냐”고 하지만 아바이 마을의 피가 섞이지 않으면 그 맛을 모르지....

설날에는 명태가 아주 많이 잡혀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며칠간 조업을 하지 않는다. 간조(정산)도 하고, 새로운 배를 선택하고, 뱃사람을 구하고 한마디로 인사이동이 있다. 그때 그 뒤에서 삯일 하는 사람들도 쉬는 날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낙시 일... 알낙시를 보채에 묶고, 꼬인 말기 풀고, 신낙시 묶고, 양미리 미깟 썰고, 쪼비대 만들고, 조비대판 구멍뚫고, 낙시찍고, 낙시가래고, 함지 못질하고, 모래덮고, 바다에서 떡이 되어온 낙시알을 칼로 분리하고.... 헝클어진 말기 사리고.... 용어만 들어도 멀미나는 고된 낙시 작업이 잠시 중단 된다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실컷 자서 좋고, 일하지 않아서 좋은 날이 설날이었다.

아침을 잔뜩 먹어 순대처럼 배가 부풀면 할 일이 있다. 친척들에게 새뱃 돈을 받으려 나가는 것이다. 먼동이 트면 제사와 아침 밥이 해결되고 드디어 용돈 버는 시간이다. 내 돈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명태 삯일을 해도 큰 누나가 그 삯을 주관하기에 내 몫이 없다. 기회는 세배 돈이다. 우리는 외가가 많다. 피난 나온 식구들이 이웃에 옹기종기 모여살고 한 집에 5명 이상의 아이들이 있어서 동작이 늦으면 세뱃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행이 우리 엄마가 제일 큰 누나라서 외삼촌들이 자녀들이 거의 다 와서 세배하고 용돈을 받는다. 먼 친척 아이들도 와서 세배한다. 우리 엄마에게 세뱃돈을 받는 즉시 나도 외삼촌과 친척 집으로 달려가 세배하고 용돈을 받는다. 우리 엄마에게서 받았으니 나도 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형과 함께 가서 세배를 하면 꼭 차별을 받는다. 형은 100환 나는 50환... 62년 군사혁명이 일어나 화페개혁이 일어난 후에는 10원, 5원씩을 받으면서... 나는 동생이라 그렇게 준다는 것이다. 시샘도 나지만 성질도 난다. 그러나 부지런함으로 승부수를 건다. 형보다 한집이라도 더 다니는 길 밖에..... 그때는 안면도 깔고 뻔스럽게 넙죽 절한다. 돈을 바라고.... 푼 돈이라도 횟수가 많으면 결과는 비슷하다.... 그래서 설날은 좋은 날이다. 절만하면 돈을 벌기에.... 친구들을 만나면 얼마 벌었느냐고 자랑을 경쟁하듯 한다.

그 돈으로 뭘하느냐? 전쟁의 잠재력이 있어서인지 당시 우리들은 장난감 권총과 화약을 사서 온 동네방네 욕먹어 가면서도 빵빵 거리고 화약냄세 풍기고 다녔다. 초가집, 기름 루핑집이 대다수인 집에 위험도 모르고 싸대고 다녔다. 화약이 불발이 돼서 피시식 거리면 황급히 끄느라고 손을 데워가면서.... 그리고 삐다마(유리구슬) 사서 삼치기 하고, 그림 딱지 사서 따먹기 하고 못쓰는 양철 물동이에 쌓아두던 추억이 새롭다.

늦게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아 엄마에게 새배시키려 김포에서 속초 청호동으로 눈길 헤치고 내려간다. 청호동에 가까워 오면 애들은 코를 막는다. 청호동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고약한 바다 갯내음이 난다나? 그러나 나에게는 고향 냄새인데.... 지금은 엄마도 가셨다. 아바이 마을에는 골목마다 차들이 가득 차 있다. 객지에서 고생하고 온 자녀들이 부모님을 뵈려 내려간 것이다. 세차한 멋진 차들을 타고 와서 설빔을 입고 다닌다. 그래 맞아. 고향을 잃고 피난오고 바다에서 고생한 부모를 찾아뵙고 위로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지..... 때로 렌트카를 빌려 타고 오면서. 고운 옷을 입힌 손자 손녀들을 보여 주려고.... 우리 아이들도 설이면 내려간다. 불평도 하지만 할머니에게 세배하고 돈받아 좋아하던 모습을 본다. 이제 우리가 바톤을 받을 때이다.

어느 날 엄마가 나만 가만히 부른다.
“엄마, 왜요. 무슨 할 말이 있어요” 엄마는 다락에서 무언가 꺼내서 보자기를 풀어 보인 다. 나 도 모르는 유산을 푸는가? 순간 착각이지만....
“애비야! 이거 얼른 먹어. 애들이 보기 전에....”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좋아하는 털 게를 쪄놓고 살을 발려 놓고, 문어를 삶아 썰어 놓고 애들이 오기 전 얼른 먹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뛰어 들어온다.
“아빠 이게 뭐야? 게 살이잖아? 응, 씨... 혼자만 먹고... 할머니 나빠...
아 빠만 주고....” 엄마는 얼른
“이 간나 새끼야(애칭), 이런 것은 애비가 잘 먹으니 주는 거지”
아들 놈이 삐쳤다. “나두 잘 먹는데....”

나는 먹는체 하다가 엄마 몰래 우리 아들에게 주었다. 누가 이를 ‘내리 사랑’이라 했던가? 사랑보다 더 큰 유산이 어디 있는가? 그날 우리는 사랑의 보따리를 푼 것이다. 이제 그 아들 놈이 커서 새 살림 차릴 때가 되었으니.....

누가 설날이 좋다고 했는가? 빨리 오라고 했는가? 세대교체가 이렇게 빨리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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