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18-청초호이야기

6,550 2009.08.3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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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가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그 사이에 호수가 두 개 있어서 유명하다. 청초호가 동적이라면 영랑호는 정적이다. 청초호가 아버지 같다면 영랑호는 어머니 같다. 면적 1.38 평방킬로미터, 둘레가 약 6킬로(지금은 개발로 5킬로쯤 된다). 좁고 긴 사주(砂洲)에 의해 동해와 격리된 석호(潟湖)로 북쪽에 입구가 열려 있다. 이 호수는 선박들이 외해(外海)의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을 두고 병선(兵船)을 정박시킨 일도 있다고 한다.

태백산맥의 미시령(彌矢嶺:826 m)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청초천이 동류하면서 학사평(鶴沙坪)과 소야(所野)평야를 이루고 조양동(朝陽洞)에서 청초호로 흘러든다. 잘록한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는 이 호수는 현재 속초항의 내항으로, 500t 급의 선박이 내왕할 수 있다. 북쪽에 영랑호(永郞湖)가 있고, 남서쪽에는 속초해수욕장이 있다.

청초호는 약 6,000~8,000년 전부터 해수면의 상승과 연안하곡의 침수 및 파도에 의해 사주(Wave-built sand bar)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석호(Bar built lagoon)라 한다. 석호는 해안가쪽에 육지를 관통하는 수로가 있으며 이를 통해 바다와 연결이 되고 상류지역의 유입하천(담수)과 하류지역의 해수가 혼합되는 기수호(汽水湖)적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게 된다.

동해안안의 석호들이 그러하듯 청초호는 과거부터 역사적으로도 절경으로 이름난 곳으로서 보존가치가 높은 경관을 지녔다. 자연호인 청초호는 수변의 경사가 완만하고 수위가 안정되어 있어 습지 식생이 발달할 수 있다. 물과 육지가 만나는 경계인 수변습지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며, 육상생태계 또는 수중생태계보다 생산성이 높고 생물 다양성이 높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습지는 다른 어떤 서식지보다 우선하여 가장 보호해 대상이다. 동해안 석호에는 많은 새들이 찾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호숫가의 얕은 수초대와 정수 식물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중에서도 깊은 중앙부에 비하여 호숫가 얕은 수초대에 더 많은 저서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따라서 동물서식지의 보호를 위하여 습지 보호가 필수적이다. 또한 습지에서는 유기물이 퇴적되고 분해되는 자연정화의 기능이 활발하므로 수초재의 존재는 수질의 개선에도 크게 기여한다.

청초호는 내륙의 자연호와는 달리 해수와 담수가 섞인 기수호(汽水湖)로서 담수와 해수의 중간정도 염분도를 나타내고 있다. 담수생물과 해양생물 및 기수성 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로서 다른 호수나 해양생태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환경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보전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전쟁직후 청초호 입구에는 폭격에 침몰된 소형 함정들이 몇 척 침몰되어 있었고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그 간판과 옆구리를 뜯어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우리 집도 그런 집의 일부였다. 지금처럼 무지한 항만청의 개발 전에는 영금정 쪽에서 굴러온 파도의 여파가 청초호안의 내수면을 잘 섞어놓아 각종 고기가 가득하였다. 호수 안에서 청어와 고등어를 볼 수 있었고 맑은 통로 입구에는 고기떼가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장관이었다.

50년대 말부터 속초가 동해안의 황금어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겨울에는 명태잡이, 봄에는 꽁치, 여름에는 오징어, 가을에는 도루묵(은어)..... 배마다 만선을 이루었다. 그때 고기가 더 많이 잡혔던 것은 몇 년동안 전쟁으로 바다 자원이 보존되었고, 잡는 기술이 열악했기에 그러했다고 본다.
조용하던 청초호는 때 아닌 원양어선(전국에서 다 모임)으로 하루도 조용할 새가 없었다. 오징어 내장이 곳곳에서 청초호로 쏟아졌고 명태 내장과 덕장에서 흐르는 물은 청초호를 썩게하는 주 원인이 되었다. 비에 상품가치 없는 양심까지 버린 썩은 오징어도 청초호 행이고.... 갈매기들은 스카이 다이빙하면서 떠다니는 오징어 내장과 명태 간을 채 갔으며, 오염된 물에 얼띤 숭어들은 방향을 모른채 떠 다니며 사람들의 무지를 비웃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수백척의 배가 겹겹이 호수에 정박하고 출어할때는 청초 호수물을 다 뒤집고 나간다. 잡아온 고기의 양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많고 많았다. 조합 어판장은 고기로 넘치고 덕장마다 오징어, 명태로 길을 막을 정도다. 수없이 많은 배들이 만선기를 꽂고 온다. 거의 가라앉아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고기가 무분별한 남획으로 줄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니 70년대 중반이라고 본다. 청초호는 그 남획을 다 받아들여 병이 났다. 악취가 나고 오염된 물이 호수를 채우고 주변부터 썩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몰라도 고기가 적게 남으로 인해 어선수도 줄고 청초호는 시민들의 환경의식과 함께 차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수 면적의 삼분지 일이나 잠식하는 항만청의 일방적인 개발이 호수를 멍들게 하고 자연호에서 인공호로 바꾸어 놓았다. 조명달린 구름 다리 하나 놓은게 습지 하나만 할까?

어릴 때 청초호의 추억은 중국의 삼국지에 제갈공명이 주유를 통해 조조의 백만대군의 수군을 불태운 “적벽대전” 같은 일을 경험할 때이다.
어느 추운 겨울 명태잡이 어선들이 포구 안쪽에 정박하고 다음날 출어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수협 어판장에 정박한 배에서 불이 났다. 아이러니칼하게 바다에서 불이나면 물이 많아 쉽게 진화될 것 같지만 오히려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겨울바람이 서쪽에서 세차게 불어오고 한척의 배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항구 안에 같이 묶어논 배들을 집어 삼켰다. 아우성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니 청초호수가 온통 불바다였다. 세찬바람, 배에 있는 중유, 나무로 된 배, 거기에다 조합에 저장한 중유 드럼통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온 항구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한강에서 쏘아 올린 인공적인 폭죽이 터지는 것보다 더욱 실감나게.... 드럼통이 불에 달아서 터지면서 하늘로 솟는 모습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그 불길이 더 거세어 청호동쪽 하꼬방을 위협하고 있었다. 불똥이 낙하산처럼 쏟아져 내린다. 집집마다 바닷물을 지붕과 집에다 붓는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루핑(기름종이)과 초가집은 기름 불똥에 속수무책이었다. 선주들의 통곡과 불타 재산을 잃은 당시 부모들의 아픔을 모른 채 철부지 우리들은 마냥 재미있었다. 남들은 재산이 날아가고 속이 타는데..... 어린 우리는 가장 멋진 불꽃놀이를 보고 즐기는 것이다.

청초호가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속초가 발전하면서 사방에 켜논 네온과 야간 조명이다. 호수에 비쳐 두배 아니 바람 물결에 따라 여러 배로 쪼개지는 빛, 빛 하나가 물에 비춰 극대화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바다의 오징어 불과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청초호는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렇게 정서적이던 호수가 속초의 하늬바람(서쪽에서 부는 펜바람)을 만나면 언제 조용했느냐 싶게 청초호는 뒤집어진다. 꺽는 파도, 호수안의 가라앉은 오물까지 바람과 함께 뿜으며 청호동은 또 비상이다. 간(소금)물을 온 사방에 뿌려 집과 담들이 하얗고, 철조망은 일년도 못되어 녹슬고, 화장은 하나마나 아예 포기하게 만들고... 성나면 무섭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그 조용하던 청초호도 이따금 성깔을 드러낸다.

비가오면 누런 호수, 바람불면 검은호수, 조용할때는 그 이름처럼 말고 푸른 호수.... 여기서 우리가 자랐다. 우리 교가에도 “청초 호반에...”라면서 빼놀 수 가사가 되었다.
전마선 타고 논산가서 뽕(오디)따먹고, 무를 서리하던 그때의 필드가 청초호이다. 고기밥을 마련하느라고 바다 지렁이를 파던 곳도 청초호반이다. 홍수나면 나무를 주우려가던 곳도 그 호수이다. 가끔씩이지만 청초호가 얼면 그 위로 조심스럽게 겁도 없이 건너던 그 시절, 봄 해빙기에는 녹은 어름덩어리가 나룻배를 막던 그때를..... 무슨 볼거리라고 오염된 시궁창을 퍼내는 준설선 옆에서 떠나지 않고 그 오르락 내리는 대형 집게발을 보던서 신기하해던 시절, 그때 무슨 과외갈 걱정이 있는가? 이게 다 철없는 어린시절, 청초호의 정서가 아닌가. .

친구 승범이 아버지는 이따금 우리 집에다 조개파는 전마선의 노를 맡긴다.
“ 영택아 우리 노를 여기 놓고 간다 ” 저녁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 예, 놓고 가세요 ” 누가 가져갈세라 몇 번이고 보던 노...
그 청초호 입구에서 밤낮없이 어깨가 문들어지도록 조개 파면서 자식 공부시켰던 아버지들.... 훗날 자식들이 교장이되고, 공무원이 되고 사회인으로 기른 밭이 그 청초호가 아닌가?
송호 아버지는 어떻구?, 청초호 중간 조선소에서 목공일로 자식 공부시켜 남을 봉사케 하는 일꾼을 낳은 것 아닌가? 어깨 너머로 배운 목공일이 어려운 남을 돕는 도구가 될 줄이야....

이제 청초호는 오염된 호수가 아니다. 점점 살아나고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조화하면서 섞이면서 살아난다. 맑은 물에 숭어와 망둥어, 배도미, 전어, 농어, 최근에는 깔끔하기로 이름난 멸치와 고등어까지 항내에서 낙시꾼들에게 걸려 나온다. 이제 우리도 내 것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독선에서 서로 섞여사는 지혜를 이 청초호에서 배워야하지 않는가? 청초호에 가라앉은 오염물질처럼 성질을 가라앉히고 나타나는 면, 늘푸른 청초호의 모습을 나타내야 하지 않는가? 오늘도 서민의 음악, 뽕짝을 튼 유람선이 청초호에서 바다로 나간다. 우리 어릴 때의 추억거리인 그 청초호를 가로 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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