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17-등대이야기

9,570 2009.07.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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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가면 북쪽방향 동명동 언덕에 우뚝 솟은 등대가 있다. 낮에는 하얀 모습으로, 밤에는 빛으로 가깝거나 먼 바다에 떠있는 배들의 고향이자 나침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항상 기준이 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기준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뱃사람에게 등대는 언제나 육지를 그리게 하고 항구로 인도하는 기준이다. 바다에 배를 보낸 육지 아낙들에게는 ‘안정항해’를 담보로 묶어 육지의 사랑을 빛으로 보내는 희망의 탑인 것이다. 요즈음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위성항법(바다 네비게이션)으로 배들이 항구로 찾아 온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배들에게는 항구 가장자리 높은 곳에 선 이 등대를 보고 찾아 들어오며 등대를 의지한다.

속초등대는 속초를 어항으로 만들어 다른 도시와 차별화하고 피난촌을 시로 승격하게한 일등공신 중 하나일 것이다. 속초에 등대가 세워진 것은 6.25 전란 후이다. 휴전선을 바로 앞에 둔 속초에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항구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선박들이 빈번하게 드나들면서부터라고 한다. 속초등대는 1956년 12월에 착공하여 1957년 6월 8일부터 등대불을 밝히기 시작하였으며, 등탑은 높이가 10m로서 등대가 위치한 절벽높이 38m까지 합쳐 해발높이는 48m에 달했다. 등대불빛은 45초에 4번 반짝이며 그 빛은 36km(약90리) 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먼바다에서는 이 등대들이 반짝거리는 불빛의 주기를 보고 각 항구를 알아낸다.

어느 날 속초 앞 먼 바다에 나가 오징어를 잡을 때 선장인 외삼촌이 동해안의 등대를 식별하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다. 날씨 좋은날, 통통배로 서너 시간 걸리는 바다로 나가면 육지는 점점 희미하고 우뚝 선 설악산 봉우리와 금강산 봉우리가 가물거리면서 보인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먼 육지에서 오징어잡이 배의 불이 찬란하게 빛나는 중에도 분별이 되는 거진 등대, 아야진 등대, 속초등대, 주문진등대가 동시에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들 은 반짝이는 주기로서 각 항구의 특색을 나타낸다. 그 가운데 반가운 속초항은 45초에 4번 반짝인다. 또 밤사이에 물풍(동해안에는 수심이 깊어 닻을 놓을 수 없기에 오징어 배가 떠밀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대형 낙하산을 바다에 띄운다)이 해류에 얼마나 밀렸는가를 보고 자리를 교정하기도 한다. 교정하지 않고 고집부리다간 월선조업이 될 수도 있으까....

속초등대의 등명기는 1953년 일본에서 제작, 1957년 등대설립 당시에 설치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이 렌즈의 직경은 무려 1m에 달한다. 특히 이 등명기는 추의 무게로 회전하는 방식으로 추 무게가 최대 230㎏까지 활용되며 시계추 같은 역할을 하는 이 추가 한번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7시간이다. 속초등대 전망대에서는 속초항방파제등대를 비롯하여 조도북방등부표, 조도등대, 속초항등표 및 조도남서방등표 등 여러 종류의 항로표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속초등대는 2005년 종합 정비공사를 착공하여 2006년까지 시행되어 이제 신축등대는 높이 28m의 구조물로서 등고가 66m에 달한다. 또한, 해양수산홍보관, 등대 테마공원 및 바다전망대 등을 설치하여 관광명소로 가꾸어나가고 있다.

속초 등대는 그야말로 볼 것 많은 자연으로 둘러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초등대에서 바다와 시내 그리고 항구를 보면 가슴이 확 트임을 느낄 수 있다. 등대 전망대 에서 보는 설악산 경관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금빛 백사장들, 금강산 자락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자연경관과의 조화로움을 더해주고 배들의 바닷길을 인도해주던 그대로의 추억을 현재는 등산로에 듬뿍 담아 낭만을 전하고 있다. 밤에는 서울사람들은 돈을 들여 일부러 만든 야경을 즐기지만 속초등대 앞 밤바다에는 먹고 살기위해 밤을 지새우는 오징어 집어등이 장관을 이룬다.

등대의 고마움은 안개 낀 날에 더욱 부각된다. 고동을 울리면서 육지의 위치를 알린다.
“우 -- 웅, 웅 우 - 웅” 애처러운 이 소리.... 밤새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가슴처럼, 큰 소리에 담아 몇 십리 삶의 터전, 거친바다에 나간 자식같은 배들을 불러 모은다. 때로 시험공부하는 아이들에게와 밀애하는 자들에게는 소음이다. 그러나 안개 낀 날 길을 잃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항구를 향해 들어오는 어부들에게는 사랑의 메아리가 아닐 수 없다. 어릴 때 고동이 울기 시작하면 괜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같이 따라 울고 싶어지는 것을 느낀다. “등대야 너는 무엇이 슬퍼서 그렇게 밤새 우느냐....” “내일도 또 수제비 먹을 생각에 우느냐, 아니면 나처럼 고무신을 잃어 버려 야단 맞을까 미리 우느냐....”

어느 날 전마선을 빌려 타고 항구를 벗어나 영금정과 등대를 돌아 지금의 장사항 앞까지 왔다. 거기에는 노랑가자미가 잘 잡힌다. 그래서 애써 한 시간 이상을 노를 저어 갔다. 정치망에 줄을 매고 정신없이 가자미를 잡아 올렸다. 점점 잘 잡혔다. 한 번에 두세 마리씩 노다지이다. 그런데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하늬바람이 처음에는 솔솔 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하게 불었다. 한참 정신없이 잡다보니 낙시줄이 점점 뻗힌다. 왠일인가? 정치망에다가 묶은 줄이 풀린 것이다. 너무 급했다. 힘껏 노를 저었다. 정치망까지 가야하는데.... 그러나 속초바람이 늘 그렇듯이 미친듯이 담력시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점점 바다로 밀어간다. 이때 사력을 다한다는 말을 써야겠다. 입영 날짜를 잡아 놓았을 때라 가장 힘이 있을 때인데도 역부족이었다.

점점 지치기 시작하고 배가 육지에서 멀러질수록 파도는 뱃전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리고 물이 찼다. 지금처럼 믿으면 기도라도 할텐데..... 이제는 살아야 한다. 배안에 차오르는 물을 푸느라고 노젓는 것을 포기했다. 힘이 점점 빠졌다. 이제 대안은 다른 동력선을 만나는 것이다. 구조할 배를 찾느라고 목이 빠지게 처다보고 거친 바람파도속에서도 손을 흔들었다. 목도 쉬고 힘도 빠지고 야속한 배들은 그냥 못 본 듯이 멀리서 지나간다. 봐도 그냥 가는 것인지 아니면 못 본 것인지.... 등대가 점점 작아보였다. 죽는 것은 시간 문제이었다.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이래서 물귀신이 되는구나. 우리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까. 잘 못 먹고 큰 것이 원통해서 더 울겠지.... 그리고 늘 그랬듯이 밥 먹을 때마다 혼을 달래려고 한숫가락씩 떠서 던지겠지.... 하기사 죽는 놈이 별 것을 다 생각하네... 목도 마르고.... 그런데 어떤 동력선의 소리가 난다. 물이 가득찬 배에서 다시 일어나 젖먹는 힘까지 다해 고함을 질렀다. 점점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감격... 또 감격.... 우리 배줄을 넘겨주고는 거의 실신했다. 한참 후 일어나보니 육지였다.

속초등대 앞에서의 일이었다. 고마운 사람들... 아직도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 사람들은 나의 작은 빛이었다. 등대가 그러듯이 밝은 대낮에는 등대 빛도 빛이 아니 것만 어두운 밤에는 그렇게 고마운 빛일 수야.... 세상에서도 등대가 되어야 하는데.... 이름도 빛도 없이 남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도 살 가치가 있는가 보다...... 등대를 볼 때마다 그 고마운 사람들.... 나도 작은 빛이라도 되어야 할 텐데 벌써 해가 기우니....


댓글목록

정성수님의 댓글

항상 형님의 추억이 담긴 멋진글  ....<BR>고맙고 감사합니다<BR>저는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청호12회 정성수 입니다<BR>아마 형님 어머님과 고기장사를 같이했던 옥수 어머님을 기억하시는 지요, 2째 아들 입니다.<BR>계속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어디에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속초에 오시면<BR>만나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습니다<BR>항상 건강 하십시오<BR>

김미자님의 댓글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속초등대는 아직 못가봤읍니다^^ 집앞에 있는 청호동의 하얀 등대가 최고인줄 알았거든요^^ 친정 오빠들따라 낚시하러 갈때 전 하얀등대의 뻘건 녹물이 흐르는 철심사다리를 타고 등대에 오르곤 했답니다^^ 선배님의 글 읽으면  지금은 안계신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넓디넓은 부모님 품안 같은곳,...그런  고향이  그립습니다....건강 잘 챙기시고  고향 생각 잊지않고 많이 많이 생각나게 해주세요^^^^글  감사합니다    (청호 1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