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폭설이야기

19,013 2008.12.2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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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설(雪)이라는 자연현상은 하늘이 내린 신비 중에 신비이다. 눈은 모양이 거의 다 다이야몬드 같이 정육각형 위에 꽃이 핀 형태이다. 사람들에게 겨울에 비 대신에 주는 하늘의 선물이다. 겨울에 비가 내리면 사람에게 얼마나 삭막할까? 우박처럼 내려와서 만물을 때려 부수려는 것도 아니고 사뿐히 내려와서 앉는 그냥 아름답기만한 눈, 개체도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쌓인 흰 자태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에 동남아 사람들의 눈 구경은 관광코스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축복이다.

동해안에 자리잡은 강원도 속초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그런 눈을 보기 힘들지만 우리 초딩시절에는 정말로 많이 왔다. 김포에 와서 20여년이 지났지만 30센티 이상 쌓인 것을 본적이 거의 없었다.

속초에서 눈이 많이 올 조짐은 바다에서부터 흐리면서 내릴 때이다. 주로 설날을 전후로 2월에 많이 온다. 어떤 때에는 3월에도 폭설이 올 때가 있다. 초딩 어릴 때 우리 집은 오두막집이다. 석가래 위에 짚(이엉)을 이어 만든 삼각형 집이다. 땅에서 처마까지는 70-80센티도 떨어지지 않으니 오막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집은 잠을 자고 나면 밤새 온 눈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할 때가 있다. 고드름이 감옥의 창살처럼 우리를 가둔다. 눈이 오면 우리 집은 비상이다. 큰누나. 작은 누나, 형과 나는 삽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교대로 눈을 치운다. 우리뿐만 아니라 아바이 마을의 약한 집들, 하꼬방이 전부 위협을 받는다. 그나마 약한 석가래에 부담을 적게 하고 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지붕 위에서의 작업은 다른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식구 수마다 불침번을 선다. 조금 치우고 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또 그 많큼 쌓인다. 땀이 범벅이고 지치고 쓰러질 때도 있다. 그래도 계속 눈을 쓸어 내린다.


속초의 눈은 오기 시작하면 일주일 계속 올 때가 있다. 쓸고 치워도 끝이 나지 않는다. 지긋지긋하다고나 할까. 어른은 지겨울지 모르지만 우리들 은 눈밭에서 구르는 뛰는 개처럼 마냥 좋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개의 눈은 시네마스코프 시대의 흑백 영화처럼 만물이 흑백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좋아한다고 한다. 폭설이 올 때 우리들의 눈도, 기분도 즐겁다. 흰눈으로 덮힌 설악산, 울산바위, 방파제, 등대... 온통 흰눈이다. 명태 낙시 일을 며칠 쉬어서 좋고, 덕장에 걸어 논 명태가 황태가 되는 조건 중에 눈처럼 좋은 일이 있겠는가? 눈썰매 타는 것도 재미있고, 더 재미있는 것은 눈사람 만들기와 눈싸움....덕지덕지 붙은 하고방에서 버린 눈이 대문 밖에 쌓여서 길이 막힌 바람에 옆집에 굴을 뚫고 대문사이로 왕래한다. 에스키모에 사는애들이 된 것처럼 철부지 우리들에게는 다 추억거리이며 재미이다. 집이 무너져도 좋고, 밥을 굶어도 좋다. 걱정은 어른들이 할 일이고 우리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눈이 온 다음 날에는 좀 따뜻하지만 그 이후에 살을 에우는 추위는 모든 사람들을 웅크리게 하고 설설 기어 다니게 한다. 훗날 알았지만 ‘설설긴다’라는 말은 설설(雪雪) 즉 눈이 계속 쌓이면 걸음걸이가 기어간다는 한자어가 재미있다. ‘빙빙(氷氷)돈다’도 마찬가지...

눈이 계속 올 때 아바이 마을의 식량은 구호물품인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반찬은 김장이 기본이다. 이 김장은 명태를 밑에 깔고 무와 함께 절인 배추김치.... 늦가을에 절인 도루묵을 식구 수대로 삶아서 배당하여 먹는다. 또 모자라면 명태 미끼로 쓸 양미리를 먹는데 맛은 도루묵만 못하지만 없을 때에는 그것도 비상식량이 된다. 덕장에 걸어논 명태는 팔 것이라 금물이지만, 가끔 언 명태를 구워먹는 맛은 가난한 마을의 겨울의 맛이 아니던가? 눈 오는 날은 어른들에게는 화투로 밤을 새우는 날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왜 등교에 목숨을 걸었는지 모른다. 요즈음 같으면 학교에서 휴교조치를 취하건만 일제의 잔재가 벗어 나지 않아서 그런지 선생님들도 50센티 이하는 눈으로 보지 않는지 등교를 밀어 붙인다. 눈이 녹으면서 구부러진 고무신에는 물이 넘쳐 가득하다. 반은 얼고 반은 녹으면서.... 가난한 아이들의 발은 그때부터 단련이 되가고 있었다. 장화는 어쩌다가 잘 사는 애들이 신는 것으로 그나마 몇 명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학교로 간다. 난로에 발을 녹이면 처음에는 아려서 몸을 바르르 떨고, 좀 녹아지면 며칠 닦지 않는 발 냄새가 교실을 진동시키고.... 그 냄새를 참아준 선생님들이 너무나 고마웠지....

엄마가 속초에 살아 계실 때, 명절에는 우리 아이들을 봉고 차에 싣고 처와 함께 간다. 설날에 아이들을 세배시키고, 또 겨울이 끝날 무렵에 엄마 생신이 있어 인사하려 또 속초로 간다. 엄마 뵐려고 가지만 때로 속초의 눈이 그리워 간다. 속초에 갈 때면 설날 전후든지 생신 전후든지 꼭 눈 오는 날을 경험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계령과 미시령을 오르고 내리는 일이다. 갈 때 체인을 준비하는데 2개씩이나 싣고 간다. 어느 해 한계령을 지날 때 눈이 엄청나게 왔다. 체인 두 개가 다 터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또 눈이 올 때 체인을 채우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몇 번 죽을 뻔하고서야 깨달았다. 차가 미끌어지면서 뒤바퀴 가 헛 돌아갈 때면 뒷골이 오싹하다. 그런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눈이 있기에. 엄마가 있기에 속초로 눈을 뚫고 갔다.

엄마는 항상 하시는 말 “무슨 죽일 일이 있다고 이렇게 애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오느냐?”고 말씀하신다. 처는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그래서 처는 처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내심 기다리시는 것을 알았다. 올 줄 알고 준비한 가재미 젓갈, 명란, 생선 말린 것을 보면 알아챈다. 나는 속으로 “앞으로 보면 몇 년 더 보신다고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역시 돌아 가시니 목숨걸고 겨울눈을 뚫고 가는 일이 뜸했다..

훗날 교인 가운데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속초 근처로 갔다. 겨울을 지난 이등병 아들이 엄마에게 편지를 섰다.


“ 엄마 이 놈의 동네는 왜 이리 눈이 많이 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병장과 내무반 근처의 눈을

쓸고 치워도 끝이 없어요. 겨울은 눈을 치우다 지쳐요...

나보고 잘 있느냐고 묻지 마시고 눈이 오지 않도록 기도

좀 해주세요....”


그 말을 하는 엄마에게 나는 속으로 웃으며 “느...네가 속초 눈 맛을 아느냐....” 그러나 이제는 온난화로 더워가는 속초에서 어릴 때 그런 눈들을 다시 언제 볼 수 있을까?


댓글목록

김미자님의 댓글

엊그제 내린 눈 으로  잠시나마  옛 추억에 웃어봤읍니다...<BR>항시 고향의 애잔함을  일깨워주시는 선배님의 방문이  늘  기다려집니다.<BR>건강하세요~^^<BR>그래야  저희도  오래도록  고향 잊지않고  마음 한켠 따스히 지낼 수 있지요.....요즘은  다행히도 간간히 겨울날씨답게  춥다합니다..<BR>다시금  건강 유의하세요.....

전영택(6님의 댓글

댓글 감사하고요.  덕분에 졸필이지만 더 슬 용기가 나네요 아바이마을 의 짠맛 인생은 어디가서 든지 적응 잘합니다. 새해에는 더욱 강건하시기를.....

백한진님의 댓글

백한진입니다. 연재해 주시는 글 오늘은 자세히 읽을 시간이 없지만 그래도 귀한 진주를 발견한 양 글 제목들을 대하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섬기시는 교회를 통해서도 늘 힘이 넘치는 말씀 전하실 줄 믿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내 평안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샬롬! 

김태형님의 댓글

이야.......진짜 많이 왔습니다 <BR>이 지역은 시원시원하게 팍팍 하는 군요 <BR>더울 땐 덥게 내릴 땐 왕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