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아바이마을 통곡의 날(해일)

12,849 2008.11.2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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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된다. 달동네에서의 덕지덕지 붙은 하꼬방의 불피해, 저지대에 살기 때문에 당하는 침수피해, 산골계곡에서의 산사태, 가파른 언덕 밑에서 사는 낙석피해, 철길 옆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음공해, 탄광촌의 분진피해.... 뉴스는 항상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의 사연이 밥이다. 열악한 환경인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가난이 그 원인일 것이다.
바닷가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파도의 위험을 안고 산다. ... 특히 청호동 아바이 마을은 더욱 그러하다. 어쩌다가 찾는 도시 사람들은 파도소리가 낭만일지 모르나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어느 날 바다가의 우리 집 안에서 갯강구 몇 마리가 기어 다닌다.
엄마에게
“엄마, 왜 축항에서 돌아다니는 벌러지(갯강구)가 집에 있어요?”
엄마의 대답은
“날이 사무럴려고(험할려고) 그러는가 보지. 내일부터 큰 멀기(파도)가 올 것이다”

방파제에 나가봐도 그리 큰 파도는 없는데 벌써부터 엄마는 걱정이었다. 얼마되지 않아 그 예감은 들어 맞았다. 저녁부터 파도가 쿵쿵 거리며 방파제를 친다. 엄마에게서 배운 파도의 식별법은 짧게 꼭 틀어 박듯이 방파제를 치면 몇 시간 내로 파도가 오되 그리 큰 파도가 아니고, 크게 쿵쿵 거리면 금방은 아니지만 큰 파도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의 갯강구가 집에 들어오면 더 큰 파도가 오며, 전복이나 따깨비가 방파제 위로 기어 나오든지 게가 집으로 피난오면 사람이 피난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성탄절 때 동남아를 휩쓸었던 해일(쓰나미)에서도 육지에 있는 짐승들이 우왕좌왕하고 불안한 징조를 보였고, 바닷가에 사는 지방 원로들은 높은 곳으로 피난을 해서 화를 피했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초능력을 예고하고 있다. 무서운 날을 짐승에게 예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경험상으로 그것을 감지한다.

저녁부터 심상치 않던 파도가 방파제를 계속 내리친다. 예전과 다르다. 가끔씩 파도가 넘치는 소리가 난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룻배가 한쪽으로 쏠리고 또 다른 방향으로 쏠린다. 도저히 당겨지지 않는다. 이는 바깥 방파제에서 파도가 높다는 징조이며 항구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파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항구에 묶어 놓은 배들이 정신 없이 이리저리 쏠리고 줄이 팽팽거려 삐거덕 소리가 사방에서 난리이다. 아침에 방파제로 올라갔다. 금방 파도에 젖었다. 하마터면 물에 쓸려갈 뻔 했다. 파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연거푸 내리 달아 오더니 조금 있다가 큰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앞에 있는 첫 집을 휩쓴다. 벌써 청호동 아바이 마을 중간은 파도가 백사장을 넘어 청호동 한가운데를 질러 청초호로 빠진다. 벌써 모래위에 세운 몇 집을 삼킨 상태이다. 정말 무시무시한 파도들이다.

우리는 신포마을 아래 쪽에 있는 방파제에서 세 번째 집이다. 첫 번째 집은 아예 파도가 지붕 위에서 연달아 내린다. 폭포수를 뒤집어 쓴 바위 같다고나 할까. 또 가끔은 더 큰 파도는 두 번째 집을 넘어 우리 집 앞마당까지 파도를 뿜어댄다. 나는 더 이상 무서워 방파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 추세라면 막 휩쓸어 갈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자 엄마는 피난가야 한다는 것이다. 멀기(파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람과 함께 동에서 오는 파도, 샛바람에 의하여 오는 파도였다. 집 앞은 축항을 넘어온 파도가 도랑물이 내려가듯이 넘치며 범벅이 되었고, 누나들은 부엌에 잠긴 물을 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철모르는 우리는 그것이 마냥 즐거웠다. 물장난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물 대박을 만난 것이다. 한 낮이 되자 동사무소에서 전부 피난 가라고 방송을 하고, 소방차는 왱왱거리고 진짜 난리가 난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간단한 옷가지와 먹거리를 조금씩 들고 집을 튀처 나왔다. 우리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청호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피난민으로 인산인해였다. 그 피난 행열에 파도가 이따금 심술을 부려 옷을 흠뻑 적시도록 물세례를 주곤 했다. 신발이 다 젖었다. 넘친 파도가 청호동의 허리를 끊을 듯이 도랑물이 되어 흐른다. 피난가면서도 같은 또래를 만나면 물장구를 치고, 왜그리 재미있었든지.... 어른들은 난리를 피해 죽을 지경인데 우리들은 철없이 끽끽대고...
백사장 근처에 있는 집들은 허리가 잘리고 어떤 집은 떠내려가기도 했다. 청호동은 존립자체를 위협 받았다. 집과 재산을 잃어 슬픔에 비통하며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난 대열은 처음에는 청호 초등학교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저녁에는 학교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운동장으로도 넘친 하얀 파도가 거품을 품고 지나간다. 또 다시 온정리 가는 솔밭까지 갔다. 젖은 몸을 떨면서 매서운 바람이 자고 무서운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많은 배와 가옥이 파손되었다. 몇 몇 사람은 실종되기도 했다. 동해안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바다 근처에 사는 댓가를 단단히 치른 것이다. 아바이 마을은 때 아닌 파도 소동으로 또 다시 통곡을 하였다. 어떤 해에는 태풍의 후유증으로, 해일의 후유증으로, 일년에 서너번은 긴장하고 산다. 큰 파도소리만 들어도 잠을 설친다. 훗날 꿈에서 소스라쳐서 깰 때도 파도가 덮치는 꿈을 꾼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파도와 더불어 살아야하는 사람들과 어민들을... 훗날 정부에서 낮은 지역의 사람들을 집단이주 시켜 조양동 공동묘지를 밀고 난림으로 집을 지어 그곳으로 옮기게 했다.. 배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배를 다시 지어서 주었지만 그 배도 맥없이 부서지곤 해서 고치다가 볼일 다 본다. 가난한 서민이여...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아바이 마을이여.... 후세들은 그 짠물 먹고 자라 억척같이 세상을 헤쳐 나가리라.... 천재에도 서민은 서민일 뿐... 그래서 아바이 마을 통곡은 끊이지 않는가보다. 앞으로 올 해수면 상승으로 오는 온난화의 침수 피해는 어찌 감당할 것이며, 일본으로부터 오는 쓰나미는 어찌할꼬.... 제 3의 통곡이 오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댓글목록

따뜻한마을님의 댓글

선배님의 추억이 깃든 좋을 글  참 좋아요...<BR> 참 어려운 때 힘들고 억척같이 살아던<BR>우리들의  부모님 . 지금이라고 행복하셔야 하는데 자나께나 자식걱정 .<BR>에고 그놈의 자식이 먼지 . 불쌍한 우리들의 부모님들 행복하고 건강하고 오래 오래 사세요 .. 우리들을 이렇게 멋찌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뽀 . 후 ....

졸업생新님의 댓글

저는 힘들던 시절은 보고 싶진않지만......<BR>그것도 추억이니........그래도 역시 조금 그렇네요;;<BR>그래도 지금 현재에 살고 있다면 희망을 품고 살아보면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