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울며 끝난 인터뷰

15,591 2008.11.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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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봄
등에 떠밀리다시피 어린이 회장이 되었다. 그 때 지금처럼 치마바람이 있었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자격미달, 근처도 못 갈 때였다. 조순환 선생님의 강력한 추천, 그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회장이 되었다. 회장은 좀 공부 잘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무튼 회장이 되었다. 그 때 기억으로는 그 알량한 속초시내 사거리, 나룻배에서 시장으로 가는 사거리에서 아침에 교통정리를 순번 정해놓고 청호국민학교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호르라기 불고... 쑈를 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봄에 전교생들이 모금하여 그 전 해 겨울 바닷가에서 죽은 어부들의 유가족들에게 줄 성금을 모아 방송국에 가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속초 방송국에 갔다. 청호국민학교에서 모은 성금이라고 드렸다.
그런데 방송국 직원이 앞에서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소위 기념촬영인 것이다. 지금처럼 텔레비전 방송도 아니면서...

이곳에서 나를 울게 한 것은 방송에 나갈 인터뷰에서였다. 좋은 일을 했으니 방송에 내 보낸다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녹음방송인 것이다. 어떤 밀실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아나운서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해서 이 성금을 모으게 되었습니까?” 이렇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이번 파도에 피해를 입은 불쌍한 어민들이 청호동에 많고 또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에 자치적으로 이 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또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서 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왜 그리 말이 안되는지....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지 그때까지 청호동 밖은 공설운동장에서 각 학교 대항 축구시합에 가본 것 외에 나가 본 적도 많지 않았으며 처음 외부에 나가서 한 첫 데뷔가 방송 인터뷰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방송을 한다고 말을 하긴 하는데 계속 더듬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 이번 겨울에 파도에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또 엔지(NG), 또 엔지... 보다 못한 아나운서가 메모지에 말할 것을 적어 주었다.

그런데 나는 그 광경을 다 보았기에 눈물이 나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고 원래 코가 많은 내가 콧물 닦고 눈물 닦고 바빴다. 여러 번 다시하고 또 다시했다. 한 시간 이상을 실랑이를 쳤다. 마지막으로 끝났다고 해서 녹음한 것을 다시 들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 같았다. 그 베이스 음에는 코 한번 훌쩍, 눈물 훔치느라고 감감, 정말 촌티 끝내주었다. 더 황당한 것은 아나운서가 “왜 사투리가 그렇게 심하냐”고.... 아마 그 아나운서는 북한에서 온 오리지날 사투리를 들었을 것이다.
함경도 사투리를 아바이 마을 코흘리기를 통해서 말이다.


댓글목록

정미선님의 댓글

안녕 하세요 저는 13회 졸업생 입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문득 그리워 찾아 보앗습니다. 선배님 글들 잊어버린 추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BR>감사 합니다.좋은글....

12회님의 댓글

12회 이름으로 검색 2008.12.20 00:00

그리움이 생각나는 옛글 . 감사합니다.

졸업생新님의 댓글

저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 하였지만 <BR>그리움이 느껴지면서 사진도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