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울산바위

10,913 2008.10.16 23:36

본문

청호동에서 동쪽을 보면 바다요 서쪽을 보면 설악산 밑의 울산바위이다. 수억 년을 지켜왔을 그 바위, 우리 세대가 지난 후에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의 모든 영욕을 바라볼 울산바위이다. 울산바위는 그 높이가 해발 780미터라고 한다. 설악산(1708미터)보다 아래이지만 속초에서 보는 울산바위는 장엄하게 솟아나 설악산의 정취를 더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둘레는 4킬로미터로 화강암 바위로 30여개의 바위 덩어리로 되어 있다.


어려서 매일 바라보는 울산바위, 속초에서 산 사람들은 겨울과 초봄에 바람이 그쪽에서 강하게 내려 부는 것을 경험한다. 펜바람 현상인데 즉, 서해안에서 서서히 길게 강원도 여러 산을 넘던 바람이 갑자기 높은 설악산을 맞아 급강하면서 강풍으로 변하면서 그렇게 세차게 불어대는 것이다. 울산바위가 바람을 일으킨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울산바위의 정경은 사시사철이 다 다르지만 겨울이 온다는 경고로 설악산에 첫눈이 오고 두 번째 눈이 올 때 뒷배경의 설악산은 하얗고 검은 바위만이 자태를 드러낼 때이다. 몇 년에 한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울산바위'로 불리어지게 된 전설은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 생긴 바위들을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불렀는데,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이 바위는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는 얘기이다.

한편 설악산 유람 길에 나셨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신흥사 스님에게 울산 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인데 신흥사가 차지했으니 그 대가로 세를 내라고 하여 해마다 세를 받아 가라고 했다. 어느 해인가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제부터는 세를 줄 수 없으니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도로 가져 가라고 하자 이에 울산 고을 원님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하였더니, 동자승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草)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매 새끼를 불로 태워 재로 꼰 새끼로 바위를 묶었지만, 울산 고을의 원님은 이 바위를 가져갈 수 없었으려니와 더 이상 울산바위에 대한 세를 내라는 말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가 한자로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서 속초(束草)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오늘날 속초라는 지명이 울산바위 전설과 연계되어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계조암에서 보면 울산바위가 마치 울(울타리 즉 담)같아 보인다. 그래서 '울 같은 산(山) 바위'란 뜻으로 '울산바위'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울산(鬱山) 즉 ‘우는 산’이라는 뜻의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이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때 산 전체가 뇌성에 울리어 마치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으므로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까지 한다.


울산바위 정상은 가을철이면 단풍으로 물든 외설악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은 위치이며, 주말이나 연휴, 피서철, 단풍철이면 아주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울산바위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울산바위의 정상까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걸어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 가파른 경사가 대둔산처럼 수직으로 된 곳도 있다 설악산 입구 매표소를 지나 소공원에서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 비선대쪽으로 가다보면 곧 오른쪽으로 신흥사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곳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 선후 신흥사 앞을 지나면 울산바위 바로 밑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외길이다

신흥사를 지나 다리를 건너고 계곡을 지나 땀을 흘리고 당도하는 곳이 계조암이다, 여기에는 사람이 혼자 밀어도 흔들리는 것으로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다. 계조암은 천연바위동굴을 이용해 만든 암자이며, 흔들바위 앞에 서면 계조암 뒤로 펼쳐진 울산바위의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계조암에서 울산바위의 바로 아래까지는 15분 정도 걸리는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울산바위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는 바위높이만 200여m에 달하며, 30~40분이 걸리는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울산바위 정상부의 전망대는 두 군데이며, 두 곳이 바로 옆으로 나란히 있다. 울산바위 정상에 서면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 북주릉을 아우르는 전망이 아주 빼어나며 동해바다와 달마봉, 학사평저수지, 속초전경, 요즈음 우후죽순처럼 생긴 각종 콘도와 휴양 레저타운들을 볼 수 있다.


6학년 졸업여행 때 처음 올라가 보았고 그 후 여러차례 올라갔지만 갈 때마다 감회가 다르다. 이 험산을 올랐다는 성취감.... 거기에 펼쳐진 탁 트인 시야, 바다가 그렇게 넓게 보이고 마치 육지에 떠오른 것처럼 보이고, 학교에서 배운 지구가 둥굴다는 사실이 입증이 된다. 우리 집사람도 청년 때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나 도중에 쥐가 나서 엎혀 내려오느라고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고 한다. 아무나 올라가나?... 억센 속초사람도 낄낄 매는데.... 그리고 시댁인 속초에 올 때 미시령을 지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여러 번 들어서 테이프를 틀어논 것 같은 데도 하는 것을 보면 당시 충격이 컸었는가보다.


미시령을 넘어서면서 보이는 울산바위는 언제나 웅장함과 멋 그 자체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차를 세우고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느라고 미시령 교통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이다. 그런데 그 광경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속초를 고향을 둔 사람의 특권처럼 느낀 것은 어려서부터 그 바위산을 바라보고 산 탓이 아닌가? 어려서 큰 바위 얼굴을 보고 꿈을 키워낸 소년처럼 살지 못하고 이렇게 세월만 소모했으니.....

몇 년 사이에 미시령에 터널이 생겨서 사고도 덜나고 편하기는 했지만 그 자태는 반감된 것 같았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측면 울산바위를 볼 여유도 없이 속초에 닿기 때문이다.


어린 추억의 울산바위는 굳은 바위만큼이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 6.25 전쟁후 속초에는 아니 온 나라가 땔감이 없어 폭격맞은 야산에 가서 나무를 해야만 겨울을 보낼 수가 있다. 특히 속초처럼 추운 곳에는....

어려운 시대에 경쟁적으로 땔감을 얻으려 하기에 가까운 야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적어도 군사정권(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 정책 전에는 우리나라 야산은 거의 민둥산이다. 청호동에서 울산바위 미시령 밑까지는 차로는 12-3분 거리지만 30리는 족히 되리라. 그래도 큰누나와 작은 누나는 처음에는 청대산 근처에서 나무를 지고 왔지만 경쟁적으로 나무를 자르는 바람에 울산바위 아래쪽(지금의 학사평)까지 가서 나무를 자르고 모았다. 나는 형의 뒤를 따라 학교 수업 후에 개나리 봇짐을 만들어 그 먼거리를 반나절 소모하며 마중 나갔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봄에 강아지 풀을 손에 놓고 앞으로 부르던 동심, 바다만 보고 살던 나에게는 농촌의 살구꽃과 복숭아 꽃이 핀 아름다운 들판과 종달새 우짖는 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거기에 심취되어 형을 잃어버려 헤매는데 온 식구가 나뭇단을 팽개치고 나를 찾느라고 혼줄 나고, 해가 질 무렵에서야 다시 만난 그 추억들,,,, 그후 몇 년이 지난 후 연탄이 우리를 살렸다. 샛바람(동풍)이 불고 흐린 날은 유별나게 연탄냄새가 많이 난다. 밤새 냄새를 맡은 날은 얼떨떨하고 생명까지 오락가락 한다. 연탄이 당시 땔감으로는 혁명적 수준이었다. 연탄냄새 중독의 처방전은 김치국물이었다. 우리 다 한 두 번은 김치국 신세를 지지 않았는가 싶구나. 울산바위 밑까지의 고행도 그 연탄 때문에 멈춘 것이다.

살기 어려운 시대의 추억들은 형제 자매를 엮는 끈이 된 것 같았다. 더욱 우리는 울산바위에 걸친 구름을 보는 엄마의 일기 예보는 직감과 경험의 산물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방법이었다. 아침마다 산을 보는 엄마는 그 구름이 걸쳐진 모양이나 바람의 세기를 보고 건조할 오징어를 사야할 양을 정한다.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거기 있는 한 우리의 추억도 거기에 각인이 되어 있다고 볼까? 세상의 천기는 알면서 이 시대의 앞일을 모르는 인간에게 저 울산바위는 오늘도 묵직하게 거기 서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후배님의 댓글

후배 이름으로 검색 2008.10.30 00:00

청호동의 역사를 쓰고 있는 멋진  선배님  ....<BR>우리 아바이마을 홈페이지를 더욱 빛나게 해주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BR>선배님 처럼 많은 동문들이 이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