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멍멍이-백구

9,599 2008.04.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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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개는 집안의 부업이요, 생활이다. 개를 길러 어려운 날 팔면 비상금이 되고 비상 월사금(학생들 수업료)도 된다. 6개월에 한번씩 낳는 강아지들도 돈이 된다. 그러나 어린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정들만 하면 팔아버리기 때문에 동심을 멍들게 하는 애물단지이다. 그렇게 지극히 정성스럽게 기르면서도 어떻게 식구같은 개를 팔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불만이다. 개밥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는 엄마의 정성, 짐승이 누굴믿고 사느냐 사람믿고 살지, 지금도 짐승에 대한 태도는 그때 배운 것이리랴 . 하기사 바닷가의 개는 먹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천에 널린 생선과 팔다 남은 생선, 거기다 먹다 남은 아니 먹기 싫어 가만히 버린 수제비와 어울려 개죽을 끓이면 훌륭한 먹이가 된다. 식으면 퍼주면 된다. 토실토실 살이 찌고 언제나 끈이 풀려져있고 백사장에서 자기들끼리 뒹굴기에 새끼를 배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는 없다. 새끼들을 보면 전부 아버지가 다르다. 얼룩이 검정이 점박이, 흰둥이....그래서 개인가? 개처럼 사는 인간도 많고...


그런데 엄마는 다른 개는 다 팔아도 어려서부터 길러온 이 어미 개 한 마리는 팔지 않는다. 이름은 백구다. 그 개는 소위 우리 집의 보배 개다. 왜냐하면 젖꼭지가 기형으로 생긴 것까지 13개이고, 새끼를 낳았다하면 13마리이며 생존확율 거의 백프로이다. 어려울 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개가 새끼를 낳을 때면 우리 5식구는 초비상이다. 다 살려야 한다. 큰 누나가 4마리 받고 작은 누나가 3마리 받고 형이 2마리 나머지는 일을 갔다 온 엄마의 차례이다. 나는 언제나 구경꾼, 아니 자기가 무슨 생물학자라고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보에 쌓여 탯줄과 함께 나오는 강아지들을 핥아서 한 생명을 만드는 개의 기술은 본능이라기 보다 신비에 가깝다. 이렇게 태어난 개들은 한 두시간 후부터 젖을 향해 질주하고, 눈도 뜨지 않은 강아지들은 생존경쟁의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오막살이 단칸 방에 사람, 어미 개와 강아지들과 함께 산다. 위생은 전혀 고려없고...


더욱 이 백구가 보배인 것은 어느 해에 바다에 흉년이 들었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 우리 식구들이 굶어서 죽도 먹기 어려울 때 어디서 주워 왔는지 새벽에 고깃 덩어리를 물고 온 것이다. 온 식구가 감격했다. 또 어느 해에는 돈 보따리를 물고 왔다. 개를 쓰다듬는 엄마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가? 정말 신비했다. 훗날 성경에도 엘리야가 굶주렸을때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와서 먹여주었다는 이야기는 경험을 통해 믿게 되었다.


백구를 기른지 13년 쯤 되었을 때였다. 늙어서 눈도 거슴츠레하고 가끔 죽은 강아지도 낳고, 퇴출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주인의 눈치만을 보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각별한 정이든 개를 도태시키기는 엄마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 어느날 백구를 향해 엄마는 “ 이제 백구도 늙었구나. 팔던지 어떻게 해야겠다”고 푸념으로, 한숨 쉬며 말했다. ... 다른 개보다 정이든 개 , 아니 고마운 개, 어려울 때 힘이 된 개...

그 후로 며칠동안 백구가 보이지 않았다. 온 식구가 찾았다. 방파제 안쪽 항구 초입에 햐얀 물체가 바다에 떠 다녔다. 자세히 보니 그 놈은 백구가 아닌가? 개도 자살하는가? 지금까지도 자살로 믿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애환이 가득한 엄마의 마음을 또 울렸다. 세상에는 주인을 살린 감동적인 진돗개 이야기, 팔아버린 고향집을 향해 수백리 길을 다시 찾아온 의리의 개가 많이 있다. 우리 백구도 그런 개중의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의리있는 친구를, 선배를, 스승을 배반한 자를 개만 못한 놈이라고.... 개새끼... 살아보니 개만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기는 믿던 사람들에게 사기 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나서였다.

댓글목록

어휴님의 댓글

어휴 이름으로 검색 2008.08.07 00:00

이런 개를 어떻게 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