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속 아바이마을

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청호동 갯배" - 이상국 시인

902 2017.02.07 13:54

본문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이상국


혹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

집집마다 걸려 있는 오징어를 본 적이 있는지

오징어 배를 가르면

원산이나 청진의 아침햇살이

퍼들쩍거리며 튀어오르는 걸 본 적이 있는지

그 납작한 몸뚱이 속의

춤추는 동해를 떠올리거나

통통배 연기 자욱하던 갯배머리를 생각할 수 있는지

눈 내리는 함경도를 상상할 수 있는지

우리나라 오징어 속에는 소줏집이 들앉았고

우리들 삶이 보편적인 안주라는 건 다 아시겠지만

마흔해가 넘도록

오징어 배를 가르는 사람들의 고향을 아는지

그 청호동이라는 떠도는 섬 깊이

수장당한 어부들을 보았거나

신포 과부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

누가 청호동에 와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린 오징어를 보며

납작할 대로 납작해진 한반도를 상상한 적은 없는지

혹시 청호동을 아는지


--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작과 비평사, 1998)

 

  

청호동 갯배

                                                     이상국

 
우리는 뱃길 북쪽으로 돌릴 수 없어

우리 힘으로는 이 무거운 청호동 끌고 갈 수 없어

와이어 로프에 복장 꿰인 채 더러운 청초호를 헤맬 뿐

가로막은 철조망 너머 동해에서

청진 원산물이 가자고

신포 단천물이 들어가자고

날래 따라 나서라고 날마다 아우성인데

우리는 동력도 키도 없어

바람 물 때 손바닥 보듯 하던 아바이들 모래벌에 다 묻고

이따위 죽은 배로는 갈 수 없어

와이어로프에 복장 꿰어 떠도는 함경도일 뿐.

우리는 강원도가 아니야

우리는 속초가 아니야.

 

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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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시집 :  동해별곡(1985), 내일로 가는 소(1989,동광출판사), 우리는 읍으로 간다(1992,창비),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창비),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2005,창비), 뿔을 적시며(2012,창비),국수가 먹고 싶다(2012,지식을만드는지식), 제2회 박재삼 문학상 수상 시선집(실천문학사, 2013)

수상 : 2011년 제6회 불교문예작품상/ 2012년 제24회 정지용문학상 / 2013년 제2회 박재삼문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