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속 아바이마을

극작가 이반 <그날, 그날에>

7,716 2017.02.07 12:19

본문


〈그날, 그날에〉는 이반 교수가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가족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분단의 아픔을 다룬 작품으로 지난 79년 12월 제3회 대한민극연극제에서 극단 광장(조병진 연출)이 출품해 작품상과 희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반 원작의「그날, 그날에」는 지난 79년 극단 `광장'이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해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상, 희곡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던 작품. 실향민 마을인 강원도 속초 `아바이' 마을의 실화를 바탕으로 세대 간의 갈등과 실향민 어부들의 한(恨)을 통해 분단의 비극과 통일문제를 조명했다.
<그날, 그날에>는 2003년 일본 중견 연극 그룹 '‘3·1회’가 2003년 일본 도쿄에서, 다음해인 2004년  3월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 일본말로 공연되었다.

 

<그날, 그날에>
이반 희곡

때 1970년대 초
곳 동해안 소도시


무대 김 노인이 경영하고 있는 주막, 실내는 판자로 되어 있어 퍽 초라하게 보이는데다 구멍난 틈새로 퇴색한 씨 레이션 박스가 드러나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집임을 나타내고 있다.
무대 왼편과 뒷면 중앙에 각각 문이 하나씩 있는데, 왼쪽 것은 바깥 선창가로, 뒤에 있는 것은 안채로 통하는 출구로 쓰인다.
그리고 이 주막의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오른편 벽에 바다로 향한 커다란 창이 하나 있고, 그곳에는 색이 바랜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

 

제 2막 중 일부

김노인 배 나가기 전에 할 말이 있어 그런다.
박노인 배 나가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서는 아이 된다는 것을 두새는 모르니?
김노인 내 어째 모르겠니? 그렇지만 오늘 아침엔 해야겠다.
박노인 이 두새, 오늘 어째 이렇기 야단이니?
김노인 (술잔에 술을 따라서 한 잔 마신다.) 카, 두새야, 어전 창길이두 서울서 내려오니까, 우린 뭍에서 편안히 쉬어두 된다.
박노인 니 이제 우리라고 했니?
김노인 응, 우리라구 했다.
박노인 나는 아이다. 너는 피난 나올 때 예편네하구 아들을 데리구 나왔다. 그렇지만 난 아이다. 나는 썩은 부젓가락 하나 아이 갖고 나왔다.
김노인 그걸 뉘가 모르니? 그렇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두새나 나나, 저 북청 아지미나 다를기 없다.
박노인 다를기 없다구? 그런 영감이 나를 보구 뭍에 앉아 편안히 쉬라구 하니?
김노인 쉬자, 우린 배를 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리구 창길이 말이다. 가아가 그기 어디 내 아들뿐이니? 니 아들두 되구, 북청아지매 아들두 되잖니? 어전 돈걱정은 아이해두 일없다. 벌 만큼 벌었으면, 쉴 때도 되었다.
박노인 니 한번 말을 잘했다. 니 말대로 창길이는 우리 아들이라고 하자. 가아는 이북에 남겨 놓고 온 내 둘째 아들 놈과 동갑이라서 나두 아들처럼 생각해 왔다아. 이 두새야, 아들 하나만 있으면 다아 되는 줄 아니? 나, 이북에 이름두 채 못지어 주고 나온 간나가 있다. 그것두 어전 스무 살을 바라본다. 그 이름 없는 간나를 그냥 두고 뭍에서 쉬란 말이니? 아이된다. 난 그렇기는 못한다.
김노인 두새가 바다에 나간다구 고향에 갈 날이 앞으로 다가서지는 않는다.
박노인 무시기라구 하니? 그러면 못쓴다. 남이 들으면 배를 아이 타본 사람인 줄 알겠다. 양반 구실하지 말아. 그렇지비. 양반들은 바다에 대해서 모르지비. 그렇지만, 두새는 이제까지 나하구 배를 같이 탔다. 그것두 보통 배냐? 풍선을 탔다.
김노인 나는 지금 영갬애게 바다 이야기를 하는기 아이다.
박노인 그렇지비. 사람이 살기 편하면 배구 바다에 대해서 잊어버리기는 하지비. (커텐을 들추며) 이제 남은 것은 몇이 없구나. 이 맴을 알아 줄 것은 몇이 아이구나.
김노인 그렇기 서성거리지 말아, 이 개안에서 니 맴을 몰라 줄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아니? 다 함께 고생하며, 그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박노인 아이지비. 저 배들 하고, 바다밖엔 내 맴을 알아 주는기 없지비. 내가 무시기라구 해두 바다는 참아 준다. 그리구 배는 말이다. 배는 내 옆을 아이 떠난다.
김노인 바다는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박노인 이 바다하구 내가 찾아 가는 바다는 다르다.
김노인 새나 마를 타겠지비.
박노인 아이다. 그쪽이 아이다.
김노인 그렇지비. 그쪽이 아이지비. 내가 몰라서 물어보는 줄 아나? 북쪽이지!
박노인 (조금 놀라며) 아니 이 두새야. 내가 거기 가는 줄 어떻게 아니?
김노인 어째 모르겠니, 어째서?여기 있는 선주는 귀 밑에 똥쏜 아안줄 아니?
박노인 간나 새끼들, 어느새 와서 일러 바쳤구나. 만길이 하구 섭섭이지?
김노인 가아들을 욕할기 없다. 늦은 동삼이면 배가 새나 마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니? 또 이즈음, 그 쪽으로 가는 배치고 명태를 못잡아오는 배가 어디 있니? 그런디 우리 배는 어째서 명태를 못잡아오니, 어째서? 배가 북쪽으로 가기 떄문에 그렇다는 것을 뉘기 모르겠니?

김노인 그렇지, 진작 그렇게 말할거지비. 야, 너두, 학교두 졸업했으니까, 이제부턴 뱃일을 배워야 되겠구나. 
창길 아버진, 제가 저렇게 작은 발동선을 탔으면 좋겠어요?
김노인 그기 어째서? 우린 풍선으로 시작했다.
창길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저 작은 배를 탔으면 좋겠어요?
김노인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 어떻게 될지를 아는가? 무시기 무시기 해두 사내라면 뱃일이 제일이다.
창길 일평생 배를 탈 바엔 처음부터 대학에 갈 필요도 없지 않아요?
김노인 뉘기 일평생 배를 타라구 했니? 한 이태라도 배를 타봐야 배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 아이니?
창길 아버지, 편지로 소식 전하려고 했는데, 결과가 이제 나와서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취직했어요.

창길 그게 왜 창피한 일이예요?
김노인 그렇지비. 니 생각대로 하면 남새스러울기 하나도 없지비.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창길 아버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예요. 모두들 갯가를 떠나 도시로 몰려가잖아요?
김노인 다 미친 짓들이다. 우리가 가야 될디라고는 바다밖에 없다.
창길 힘들고 위험해요.
김노인 그렇지비. 너어들에게는 그 일이 힘들고 위험할끼다. 그렇지만 우린, 적어도, 박 영갬이나 나는 그렇지 않다.
창길 바다에 나가야만 효도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상심하지 마세요. 저도 아버님의 뜻에 따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김노인 알겠다. 그래, 서울서 살게 되겠구나.
창길 은행 지점은 여기에도 있어요.
김노인 난 여기에서 다른 데로 갈 생각이 없다.
창길 한번 생각해 보겠어요.
김노인 너는 여기가 싫니?
창길 잘 모르겠어요.


"다 미친 짓들이다. 우리가 가야 될디라고는 바다밖에 없다."

[출처] 그날 그날에, 이반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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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극작가 이반 교수 피난민 삶터로 돌아오다

설악신문 2008년 11월 17일
http://soraknews.co.kr/renewal/kims7/bbs.php?table=news&query=view&uid=13314

 

 

링크 이반의 분단희곡 연구 - 망향의식과 분단 극복 방식을 중심으로
(조보라미, 영남대학교 교수)
http://emunhak.com/chart/64_15_jobrm.pdf